돌고돌아 '사람' 살던 마을길

(2) 집으로 가는 열우물 골목길

2020-02-03     이진우
인천in이 2020년 새해 기획으로 '이진우의 동네걸음'을 연재합니다. 화가 이진우는 열우물마을에서 동네화가로 20여년 살며 벽화 등 그림으로 동네를 그려 공공미술가이자 '거리의 미술가'로 불려왔습니다. 지금은 개발에 들어간 열우물을 떠나 산곡동으로 화실을 옮겼습니다. 산곡동 화실도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오래된 동네입니다.

 
직장이 서울이라서 동암역에서 전철타기 쉬운 곳이어서 이사 왔던 십정동 218번지.

서울에서  연수구로 직장이 바뀌고 전철에서 103번 좌석버스로 바뀌면서도 여전히 십정고개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갔다. 

상정초에 다니는 아이들은 마을앞 도로로, 소방도로 비탈길로, 다시 마을길로 해서 집으로 왔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동네에는 갑작스럽게 빈집이 늘고 사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 들었다. 

 

집으로

집으로 가는길, 용궁불사 현수막이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골목이 있고 앞집 할머니가 부업하는 기계로 덜컹찰칵거리며 포크터미널 압착부위에 캡을 씌우고 계셨다. 
그곳에 사는 이웃들은 날마다 보는 이들이라 문을 열고 지내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오전이면 마주하는 골목의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어김없이 '하늘이 아빠 막걸리 한잔해' 하실 때도 있고 심지어는 '한잔사' 라는 말도 하시고 커피며 과일은 나눠 먹는다.
용궁불사 현수막을 건 빈집은 앞집 할머니께서 창고로 쓰시는데 전망이 좋아서 조금 개조해서 내 작업실(화실)로 라는 삼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집으로

하늘이는 여기를 다닐 때의 추억도 많았는데
그런데 나쁜 꿈을 꾸게 되면 배경이 여기라고 한다
이제는 재개발이 될 동네이지만 
그래 저기 저 옆의 건물 지하에서 살던 10년은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지만
늘상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싶어하던 곳이었다 ㅡㅡ;;
재개발을 해버리면 추억은 말 그대로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ㅜㅜ  (2007)

버스정류장과는 반대로 상정초등학교 방향으로 이 계단을 내려서면 꼬까신마트가 있고 아이들과 손잡고 과자를 사러 가기도 했었는데 두 아이는 초등학교를 가는 빠른 길이라 이리로 다니기도 하였다.
그림속 마른 호박넝쿨이 지붕에 있는 빈집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네 애들이 여럿모여 탄가스를 불었고 그중에 한 아이가 담배를 피우려다 불이 나서 동네사람들이 다 나서서 불을 껐다고, 난리 났었다고 저 집 바로 옆 반장아주머니께서는 덕분에 부탄가스를 다 챙겨서 잘 썼다고 하였다. 
덧붙이는 말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탄가스는) 더 이상 불지는 않는다 하셨다. 

 

열우물설경/

마을에는 철물점도 있고 분식집도 있고 치킨집도 있고 프린스양복점도 미용실도 있고 
제일다방, 삼화약국이 있었고 공중전화박스를 앞에 둔 윤미꽃화원에는 
술과 안주를 팔아 가끔은 고음이 열린 문으로 나와 길가에서 서성거리기도 하였다. 

 

옛집으로

그린 이곳은 예전 우리집 가는 계단이 있다. 
며칠 전 지나다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예전 십년간 날마다 보고 살았던 풍경이고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 모르지만 
앞집이랑 이웃들과 인사와 음식과 막걸리를 나누던 시절이 생각난다.
대문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예전 우리집의 1층에 사람이 사는지 소리가 났다.(2013)

2020.2.2  이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