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산책로를 따라, 수봉산

(25) 수봉공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2020-03-06     유광식

 

독정이

 

한 해의 첫발이 심상치 않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공포에 시달리면서 우울함이 맴돌고 있다. 모 언론에서는 당일 ‘많이 본 기사’ 코너에서 ‘오늘의 운세’가 2~7위를 차지한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여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현 시국은 연일 늘어나는 확진산수에 시선을 고정하고, 올바른 손 씻기와 마스크 사용, ‘사회적 거리 두기’라며 2m 정도의 이격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개학 연기로 집안에서 지내는 옆집 아이의 시끄러움에도, 아래층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조차도 거북해하지 않고, 모두 잘 지낸다며 되레 안심하기에 이른다. 요새 1일 자유이용권인 마스크를 단디하고 나서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전에는 마스크를 쓴 인상에 거부감이 컸다면 지금은 상호 간에 어떤 신뢰감을 주는 것 같다. 수봉산에 올라 느슨하게 마음을 풀어 본다.

 

수봉산
수봉산

 

수봉산은 미추홀구의 중앙에 예쁘게 솟은 산으로, 인천의 현충시설이 모여 있는 곳이자 주변 시민들의 알토란 같은 휴식처로 사랑을 받는 장소다. 산 둘레로 도화동, 용현동, 숭의동이 사이좋게 자리한다. 간혹 제물포역에서부터 골목을 따라 걸어오르는 방향을 탄다. 100m 높이로 그리 높지는 않아 현충탑이 있는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인천을 조각조각 나누어 볼 수 있다. 상공에서 보면 산이 위치한 수봉공원은 마치 태아기의 형상과 유사한데, 소중한 인천의 역사적 상흔들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인천 자유회관과 수봉문화회관, 어린이 놀이 시설, 궁도장, 방송송신탑 등 다양한 문화·체육·현충시설이 한데 어울려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처럼 여러 산책로가 이들을 교차 연결한다. 

 

용정초
인천대

 

태양 볕은 아침에 도화동에 먼저 도달한 뒤, 오후에 용현동으로 바통을 넘기고 마지막으로 북서 기슭의 숭의동으로 이동하며 하루를 바싹하게 말려 준다. 최근에는 진입로와 산책로가 무척이나 잘 정비되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곳곳에는 수봉산의 파수꾼인 고양이 가족들도 보인다. 한쪽에는 토끼집이 있어서 깡총깡총 친구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주인 산책을 따라나선 반려견은 기분이 매우 좋다. 운동기구에 착석한 어르신들 사이로 장군·멍군 장기를 부리는 소리가 폭발하듯 우렁찼다. 이날은 끼리끼리 학생들이 노는 모습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 학기를 시작하지 못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산 중턱 작은 공터에서 농구를 하는 청소년도 눈에 띄었다.  

 

볕바라기
수봉하이츠빌라(태풍

 

도화초 뒤에는 수봉도서관이 있다. 또한 도서관 뒤쪽으로 어딜 가도 1등이라는 인공폭포가 좌중을 압도한다. 동절기라 물은 없어 조금 을씨년스럽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휴관한 도서관 주변을 사람들이 어루만져주고 있다. 이곳은 과거 경제원조로 지어진 AID아파트가 있던 곳으로, 30년 삶의 흔적이 묻혀 있다. 이후 도서관과 폭포가 세워졌다. 폭포의 돌이 인공인지 자연인지는 모르지만 과거 아파트의 흔적이 달라붙어 화석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지만 탁 트인 시야가 있어서 좋다.

 

수봉도서관

 

봄이 되면 수봉산에는 벚꽃이 화려하게 수놓인다. 나무 꽃봉오리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조만간 수봉산에 드리워진 봄옷의 자태를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공원의 중앙을 통과하는 도로 옆 작은 돈가스집은 여전히 불티나게 사람들이 드나드는지도 궁금하다. 517, 519번 버스의 회차 지점이기도 한데, 봄 소풍 격으로 수봉산을 찾는 학생들을 기다리는 기사 아저씨의 마음이 되살아나야 하는 데라며 중얼거려 본다. 그래서 구름다리 아래 길가 양옆으로 묵직하게 주차된 덤프트럭이 평소보다 더욱더 무겁게 느껴진다. 

 

토끼장(태풍의
등나무

 

수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도화지구에 과거 선인체육관 규모를 가볍게 능가하는 몸통의 검은 빌딩이 지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체육관 철거 당시 시야가 좀 트이나 싶었는데, 4~50층에 육박하는 빌딩이 세워지는 것을 보며 저 땅은 욕심을 몰아내지 못한 땅인가 싶기도 했다. 수봉산은 인천의 중심, 신령스러운 영산을 자처하고 있다.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바라본 광장의 모습은 평온하고 건강했다. 곧 봄이 올 것처럼 말이다. 수봉문화회관 아래쪽에 비구니 사찰인 부용사가 있다. 전쟁 시 아이와 피난민을 보듬었다는 이곳의 이야기가 훈훈하다. 바이러스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 지금의 시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미를 되새기며 구름다리 고개 도로를 넘는데,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테지만 이때만큼은 유심히 보게 된 벽화가 있었다. 불안한 시국이지만 수봉공원 한 바퀴 어떨까 싶다. 입장료는 마스크 하나, 반려견 목줄 제한 길이인 2m의 사회적 거리를 고려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수봉산 방송송신탑이 조만간 좋은 소식을 수신해 산 아래 골고루 자비 아닌 자비를 내려 줄 것을 믿는다. 다음 달은 사회 ‘멸균프로젝트’인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수봉아파트
수봉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