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판에 깔린 우리의 시대상, 부평시장

[인천유람일기] (44) 부평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2020-12-07     유광식

 

늦은

 

서울에 살 때, 어머니는 이틀에 한 번씩은 구로시장에 다녀오셨다.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같이 가는 날(짐꾼 역할이겠지만)에는 구로시장 중앙에 한데 모여 있는 노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올 수 있다는 기대가 컸었다. 구로시장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듯 밝다가도 어둡고, 어둡다가도 황량한 느낌이 꿈틀대던 곳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바빴다. 그 시절 구로시장의 떡볶이 맛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기억에 각인된 새로운 맛으로 뒤바뀌어 나를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매듭이 되었다.   

 

기획전시

 

인천 부평은 이례적으로 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인구 유입이 많아졌고, ‘모인 자리에 장이 선다’는 말처럼 시장의 규모가 해를 거듭하면서 커졌다. 현대는 잠시 바람을 빼고 새롭게 단장하는 시절인지 지상, 지하 할 것 없이 시장의 끼가 갑작스레 표출되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미군기지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의류와 잡화 위주의 지하도 상가는 번외로 하더라도 지상의 시장 뜰은 빠져나오지 못할 미로처럼 보이고 원하는 것이라면 다 얻을 수 있을 만한 장소로 손꼽힌다. 시장엔 친근한 흥분이 있다.

 

기획전시
전시장

 

전국의 오일장을 돌며 장날 풍경을 오래도록 담아 온 정영신 작가의 ‘장에 가자’ 출판 전시가 최근 큰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중해왔지만, 부평시장의 시간을 부평역사박물관에 펼쳐놨다는 소식에는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장에 사람이 없는 건 코로나 경비로 인한 이유이겠다. 1층에 마련된 전시는 부평역사박물관과 한국민속박물관이 공동기획 했다. 또한 부평역사박물관이 해마다 부평의 풍경과 기억, 의미를 수집하는 꽤 중요한 사업이니만큼 매번 찾고 있다. 시장바구니 역할을 했던 봉지들이 걸려 있는 전시의 초입에는 각종 물품을 닥치는 대로 실어 날랐을 수레가 주인공처럼 자신만만했다. 물품뿐이겠는가. 낮잠도 자고 주차경비도 했을 법한 짐수레는 시장에 속한 한 식구처럼, 아버지 어머니의 넓은 등처럼 느껴진다.

 

부평깡시장
기획전시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니 기획 의도를 볼 수 있었고, 상점의 풍경과 인물 인터뷰, 유물들의 구현이 마치 시장을 거닐며 장을 보듯 꾸며졌다. 사실 전시실에서 보는 시장의 모습은 말끔하다. 이면에 잠겨 있는 이야기와 의미는 부모와 아이들의 저녁 식사 대화로 남겨둔 덤일 것이다. 우리에게 사라진 풍경이 중요함은 어떤 긴박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공감이 가는 주제이다. 구로시장의 떡볶이 아주머니가 그 맛을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머금은 기억은 한 지역을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는 양분이 될 만했다. 이후에 다시 시장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늘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 맺기가 반복되고 의미화될수록 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커지고 행복감이 들 것이다. 기억은 가장 최적의 경로로 무료우선 길 찾기를 해주는 내비게이션이 아닐지.  

 

기획전시
기획전시
기획전시
기획전시

 

전시장에서 사진과 이야기에 감흥을 느끼는 사이, 어느덧 그 넓던 부평시장을 다 돌아보게 되었다. 전시실이 이번 전시를 풀어내기엔 좁고 짧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기증유물 전시장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흥정은 남는 셈이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부평의 시장을 돌아보았다. 이보다 더 진하고 넓은 이야기가 시장 안에 있으리라 본다. 지금도 부평시장 인근은 뜨겁게 생동하는 곳이다. 

 

부평문화의거리

 

닭갈비, 순댓국, 냉면, 짜장면, 생선구이, 부대찌개, 김치찌개, 칼국수, 갈비찜, 호떡, 풀빵, 돈가스, 떡볶이, 꽈배기, 손 만두, 우동 등 부평시장에서 얻은 에너지가 많다. 물론 먹거리뿐만이 아니지만 가장 원초적인 만족은 먹는 것에서 오는 것 같다. 3차 유행 격인 코로나로 예년 같이 찾지는 못하지만, 분위기가 회복되면 다시금 발길을 향할 것이다. 아직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일시멈춤’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8년
따뜻했던

 

부평시장의 못다 한 이야기는 시장을 미처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들이 접할 수 있도록 종종 전시로 기획되었으면 좋겠다. 부평시장은 참으로 넓다. 참으로 맛있는 곳이기 때문에라도 말이다. 수능 이후 전국 600명 이상의 확진 소식은 우리를 겨울 추위로 인한 움츠림보다도 더 얼게끔 하고 있다. 당국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도 혹시나 시장하걸랑 부평시장 말고 부평역사박물관 기획전시에 들러도 좋을 것이다. 인심 쓴 듯 기간이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