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경에 입 맞추는~, 자유공원

(47) 응봉산 자유공원에서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2021-01-18     유광식

 

자유공원

 

연초부터 한파가 기승이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숫자만으로는 가늠이 잘 안 된다. 이러다가는 정말 우주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일이 가속화될 것 같다. 달과 화성, 목성을 넘는 인류의 이주가 빠르게 실행되는 것 말이다. 대부분 웃으며 그럴 일 없다는 생각이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가능성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다가오는 설날도 가족 만남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우리의 이웃을 좀 더 생각하며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신축년 겨울을 보내야 하겠다.

 

가로등에서

 

중구 자유공원에 올랐다. 인천에 놀러 온 분이라면 꼭 거쳐 가는 공원이지만 인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올까 말까 한 뜬금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공원 주위로는 치아를 발치한 것처럼 건물이 사라져버린 터가 보였지만 제물포고 입구의 야구 연습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천왕사’라는 종교 건물은 영업을 그만두었는지 기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공원의 광장 부근에 도착하니 모자를 눌러 쓴 사람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는 정도였다. 녹지 않은 눈이 겨울을 열심히 그려내고 있다. 
광장에서 내항과 월미도를 바라보며 내 좁은 평수의 미래에 바람을 좀 쐬었다. 바로 아래 개항과 더불어 자라고 있는 플라타너스의 거대한 팔짓이 건강하고, 이제 막 심은 듯한 배롱나무가 비탈진 화단을 이루고 있다.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 아래에도 수령 100년이 넘은 ‘큰 나무’가 있는데 전쟁의 포화를 비껴간 이력이 있어 응봉산 일대의 파편화된 기억을 대신한다. 

 

제물포구락부로

 

광장 한쪽 계단을 내려가면 제물포구락부가 나온다. 지금도 위풍당당하게 공원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새 단장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어 문을 두드렸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라는 전시로, 1세기 전 한국에 온 영국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려낸 한국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키스는 한국의 풍경을 사진도 아닌 그림으로 남겨 화제가 된 사람이다. 서적은 이미 본 적이 있어 좀 더 크게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기회로 삼았다. 오래된 풍경을 기록한 사진은 흑백이 많지만 그림은 컬러로 남아 있어 시간적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는 것 같다. 화가의 시선은 매우 따뜻해서 당시의 풍경을 우리에게 다채롭게 전달해준다. 당시 타국의 시선으로 한국이 그려지는 것이 마냥 좋을 리 없었겠지만 이렇게라도 남겨줘서 고마운 것도 있다. 이제 우리 주변은 우리가 잘 남겨야 한다.

 

제물포구락부

 

전시는 1층과 지하 공간에서 열리고 있었다. 관람 동선을 따라 출간된 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겨울의 모습 또한 정감 어린 장면이 많았다. 크리스마스 씰에 실린 그림도 볼 수 있었는데, 한국의 인상을 적어 놓은 이야기와 함께 본다면 더없이 따뜻한 전시 관람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준비된 모양이나 알다시피 코로나 시국에 따른 안타까움이 묻어날 따름이다. 전시는 겨울이 끝나는 2월 말까지다.

 

제물포구락부
벽면에
창가
창가

 

공원 일대에는 겨울이 내려앉아 있다. 장갑도 필요하지만 마스크도 중요했다. 마스크를 벗고 다국적 사람들과 교류의 시간을 가지는 그날을 상상해 본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일상의 시간이 더없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의 지난 삶을 차분히 돌이켜보는 시기라 여겨진다. 키스의 그림에는 침략의 분위기가 놓여 있지 않다. 결혼식, 장례식 등의 풍경에 관심을 두어 기록했고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의 모습 등 인물과 주변 자연을 묘사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

 

도로를 따라 잎이 떨어진 나무들은 이발을 마치고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니는 인간의 달라진 모습을 마치 흰 눈덩이로 착각하고는 자신들을 향해 눈덩이를 맞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할지 모른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삶이 산처럼 쌓인다.

 

자유공원로(쇠창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