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봄, 원인재

[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 (15) 원인재 담벼락에서

2021-03-15     박상희
원인재

 

인천 지하철 1호선의 원인재역은 월곶과 판교를 잇는 월판선과 이어지고, 수도권 전철 수인, 분당선의 환승역으로 최근 여러 교통 호재와 앞으로의 기대치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그 원인재역의 명칭이 역 위에 세워진 고택에서 유래한 것임을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원인재는 고택과 조경 그리고 그 주변 둘레길의 어우러짐이 너무 멋있지만, 역에서 가깝고 아파트 단지들 바로 앞에 있어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 귀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원인재는 인주 이씨 이허겸의 묘가 있는 곳으로 19세기 초 건립되었고 1994년 택지개발로 현재 장소로 이전되었으며 이허겸의 손자 이자연이 세 딸을 고려 태평성대를 이끈 문종에게 시집보내며 문벌 귀족을 형성한 가문의 재실이다. 그 후 인천(인주)이씨 여러 파의 근원이 되었으며 10명의 왕비를 탄생시킨 가문으로 고려 숙종 때 어머니 인예태후(이자연의 딸)의 고향을 기리기 위해 경사의 근원지라 하여 매 소홀 현에서 경원군으로 승격시켜 인천의 존재감이 드러난 곳이다(두산백과 참조).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고려시대 이자겸의 난의 이자겸은 이자연의 손자로 막강한 정치적 세력을 키우면서 도를 넘어 왕이 되려다 실패한 문경왕후의 아버지이다. 이런 이유로 1000년이 넘은 지금까지 후손들이 묘를 보살피며 지금까지 예를 갖추고 있었으며,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높이 솟은 이허겸의 묘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크게 휘어진 노송들의 웅장함을 보면서 가히 그 권세를 가늠할 수 있었다.

 

승기천에서

 

원인재의 정보검색에서 외우기도 힘든 많은 왕후의 이름이 어른거리는 와중에 원인재 고택에서 왕비가 막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게 한옥의 모습은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멋이 흘러넘쳤다. 지하철역에서 원인재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수많은 나무와 들풀, 꽃들이 있어 이곳이 과연 지하철 역사가 인접한 곳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지만, 바로 옆 큰 길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원인재 재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담벼락 덕분에 금세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승기천에서 바라본 원인재 살림집 명인당의 낮은 기와와 봄볕에 달궈진 누런 담벼락을 둘러싼 마른 나뭇가지들을 보니, 왕가의 집이 아닌 백성들과 이웃하는 옛 시골집의 선량한 온기가 느껴졌다. 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마른나무 가지엔 움이 트고 있었다. 왕가의 마을엔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었다.

 

2021.3.14. 글 그림 박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