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의 모델 하우스, 검단선사박물관

[인천 유람일기] (52) 서구 검단선사박물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2021-04-05     유광식

 

재현된

 

주말 빗줄기는 잔잔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피로가 가중되는 시점에 조금 더 참고 가자는 의도인지 날씨로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초록별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세계적인 사투는 어제와 더불어 오늘, 내일도 지속될 것 같다. 그만큼 장소와 거주에 따른 의미가 크다 하겠다. 그래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더 마음이 쓰인다. 시위와 비례하는 희생이 더는 없기를 기도한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집값 잡겠다고 뛰어든 숲에서 몰래 한탕 챙겨서 튄 이가 많다. 연일 폭로되는 비리 뉴스가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의 발목을 조인다. 

 

1전시장

 

서구는 경인 아라뱃길이 허리를 두르고 있는 형세다. 그 위와 아래의 삶이 있는 것 같은데, 북쪽이 검단 지역이다. 검단에는 오래전부터 선사시대의 생활 유적이 즐비했다. 가현산과 계양산 사이의 구릉지였던 검단 지역이 오래된 조상의 거처였던 것인데, 그 실상을 엿볼 심산으로 검단선사박물관에 집 구경하러 갔다. 

 

전시장
전시장

 

임시휴관 했다가 다시 열게 된 시점이 작년 7월이었다. 소독과 체온, QR 체크인을 한다. 박물관에는 검단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스케치가 1층과 2층에 걸쳐 풍부했다. 주말 관람 시간 막바지에 도착했기에 빠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각종 유물과 모형, 정보에 의존해 가슴 속 큰 집 하나 지어 볼 수 있었다. 불과 돌을 이용하게 된 인간은 점차 정교한 생활 도구를 고안하여 식량을 채집하고 동물을 사냥하며 집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검단은 구석기 시대, 중구는 신석기 시대, 강화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많이 분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인천 지역 전체가 선사의 보고였다. 아뿔싸!

 

숲을
전시장

 

전시장 내부는 모델 하우스처럼 선사시대의 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온화한 집 내부를 구현해 낸 것 같았다. 도토리를 수확하고 멧돼지, 사슴과 달리기를 하는 선사인이 있었다. 지금에라도 깎기 힘든 돌 모양이 신기해 보였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이 돌 조각을 했다면 현대는 투기를 조각 중이다. 1층 전시장 옆으로는 최근 3기 신도시 지구로 지정된 계양지구(동양동)의 유적발굴 현장을 재현해 두었다. 실제 발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유리 바닥 위를 걸어 다니며 볼 수 있었는데 무척 생생했다. 

 

동양동

 

2층으로 오르는 하얀 경사 통로에는 선사 생활의 픽토그램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것 같았다. 2층은 체험학습실로 각종 도구를 직접 만지며 사용해 볼 수 있고 퍼즐, 발굴 놀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선사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놀이방이다. 바깥에는 하늘공원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바깥으로 나오니 야외공원도 있어 올라가 보았는데 넓적한 유리 덮개 안에 돌널무덤이 있는 게 아닌가. 계단을 다시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상념이 스쳤다. 

 

2층
1층과
박물관

 

예나 지금이나 터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던 것 같다. 선사인들의 터에서 현대인들은 그보다 몇백 배 넓고 높은 집을 지어 살고 있다. 평면적으로 분포했던 그들의 삶을 접고 접어서 박물관 한 건물에 모아 둔 것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에는 안쓰러움도 겹친다. 잠시 창밖을 내다본 풍경을 건너편 아파트 창문이 꽉 채웠다. 노답이다. 

 

박물관

 

최근 거주와 투기에 얽힌 땅파기가 기승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욕망의 그릇이 왜 그렇게 차이 나게 빚어졌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거주지 건너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던 나무들이 최근 벌목되었다. 웅장하리만치 큰 기계톱 소리에 이어 ‘삐거덕 쫙!’ 하며 쓰러지는 커다란 나무의 생의 마감을 목도하면서 차라리 자라지 말 것이지 원망을 했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짧은 시간이나마 선사시대의 자연 생활상을 보게 된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 현대는 쓰레기와 집으로 투기하는 시대다. 이 점이 더더욱 검단의 선사가 돋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여전히 봄이 와야 할 장소가 많은 것 같다.       

 

선사인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