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고개를 구르고 굴러, 부평 화랑농장

[인천 유람일기] (70) 부평3동 화랑농장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2021-12-21     유광식

 

청원유치원

 

다시 고삐를 조여야 한다. 우려와 현실은 친구 사이인 듯 차곡차곡 세월에 탑승한다. 조용히 지내라는 분위기 강제 속에 중구난방 세상은 도대체 어찌 될까 싶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정작 그 모습이 구체적이지 않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세상 같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해도 뒤통수 맞는 건 아닌지 몽롱할 따름이고 말이다. 보는 뉴스에서 찾는 뉴스로 그 행위가 바뀌어야 하느냐고 휴~! 긴 한숨을 혼밥하며 내쉬어 본다.

 

소파
아름다운

 

부평3동의 서쪽 골짜기를 찾았다. 현대아파트 대단지 때문에 소위 현대가(家)라고 불리는 부평3동은 산 아래 화랑농장이라는 이름이 늘 껌딱지처럼 붙어 나온다. 화랑농장은 과거 한국전쟁 이후 상이군인들의 거주가 시작된 구역이다. 좁고 비탈진 구역에서 생활이 평탄치 않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된다. 여전히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역을 대표하는 것을 보아 한 번쯤 거닐어 볼 만한 곳이다. 

 

알뜰공간
빌라

 

화랑농장은 식당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가 모르는 긴 세월이 마을에 있을 것 같다. 현재 일부가 산곡5구역으로 개발의 도마 위에 있기도 하다. 길은 모두 화랑길이다. 그리 넓지 않은 비탈면의 마을이지만 여러 건물이 심상찮게 튄다. 인평자동차고와 화랑교회, 현대아파트, 부광고, 구르지 고개, 청원유치원, 협성요양원, 화랑맨숀(가나다), 산곡대우빌라 등 부평을 떠올리고 화랑을 대신하는 것이 많다.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들이 비스듬히 혹은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한번은 큰 인분 트럭이 청원유치원 아래 청하아파트에서 브레이크 끅! 끅! 하며 후진해 내려오는 광경을 보았는데, 아저씨야 매 하던 일이라 익숙했겠지만 보는 이는 위험천만함을 느꼈다. 길 좁은 탓이 크겠다.   

 

1979년생
화랑맨숀

 

한 때 여자기술교도원이었던 협성원이 길가에 자리한다. 맞은편에는 사용하지 않는 흉물스러운 빌딩이 하나 있는데, 볕이 넘어가는 시간과 더불어 마을의 어둠을 대신하는 것 같아 더 추웠던 것 같다. 인적이 드물고 택배 차량만 구석구석 돌며 기사님은 배달에 바쁘다. 그래서인지 곡예 운전사다. 이 작은 골짜기에서도 반백 년 현대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고 부평의 소중한 역사가 자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순찰차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주도로인

 

구역을 두르는 산은 함봉산이다. 주로 함봉산이지만 호봉산, 선포산으로도 교차하여 불린다. 그 유래를 찾아보았지만 어느 하나 속이 시원하지 않다. 각자 부르기 쉽도록 선택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부광고 맞은 편, 부평서중 뒤편 선포(仙浦) 약수터를 찾아 올랐다. 바로 옆 배드민턴장에서는 시대가요가 산속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큰 사운드로 송출되고 있었다. 신선의 샘터였다는 선포약수터는 좀 특이하다. 보면 90년대 야유회 장소처럼도 느껴지는 곳이다. 정자는 최근에 지어졌다고 하고 1979년 선포 건우회가 만들었다고 하는 약수터. 주변을 대우자동차와 협력해서 조성했다. 일렬로 벤치가 마련되었는데 마치 야외 예배당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곳. 양옆으로 조그만 탑들도 세워져 있다. 영험한 기운을 바랐던 것인가. 그러기에는 배드민턴장에서 빵빵 터지는 가요 음이 자꾸만 훼방을 놓는다. 선포라는 이름의 주점과 아파트가 선포산의 후미를 당기며 사라진다. 과연 무엇을 선포할 것인가.

 

선포산
선포약수터

 

농장이라는 이름답게 화랑농장은 한 때 양계업을 했던 곳이다. 그래서였을까? 식당이 산자락 길목에 위치한다. 근린공원 조성으로 하나둘 사라지고 있지만 몇 군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이 모두 정답다. 밤나무집, 아카시아집, 대나무집, 벗나무집, 느티나무집이 그렇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시기에 보양하기 딱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산곡동과 가좌동, 십정동을 연결하는 지점으로 그 많은 시절들의 모습이 아련해질 따름이다. 화랑농장이 좀 더 생생했던 건 그래도 먹고살 만한 공간이었을 거란 생각에서다.

 

선포산의
마을

 

큰 눈이 내린다고 해도 무섭지 않을 코로나의 기세에 온 국민의 마음이 꽁꽁이다. 아무쪼록 한 해를 그린 이야기를 돌보며 건강 챙기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한다. 선포산 화랑농장을 거닐며 선포한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