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퍼포먼스 선구자 역할을 했지요"

[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박창규 'BEATCOMPANY 한울소리' 대표

2011-07-19     이혜정


박창규 대표

취재 : 이혜정 기자

인천in-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

'살기 좋은 도시 인천' '살고 싶은 도시 인천'으로 나가기 위해선 문화·예술적 창조도시를 지향점으로, 창조적인 문화·예술 행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인천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성 혹은 대중성을 내건 활동들이 펼쳐져 왔다. 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킴으로써 살고 있는 도시의 가치를 높인다는 진정성으로 살아온 이들이다.

이에 <인천in>과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에게 다가가 집중 인터뷰를 통해 열정이 담긴 창작물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걸고 기획연재 '2011 인천문화예술을 일구는 사람들'을 시작한다. 매주 화요일마다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코너에서는 인천문화재단의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된 6개 단체를 비롯해 2011년 하반기에 활동하는 문화예술가(혹은 단체)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번 예술문화단체는 'BEATCOMPANY 한울소리'다.

타악퍼포먼스 '한울소리'의 여정

'BEATCOMPANY 한울소리'는 1990년 창단해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풍물'이라는 전통문화를 확산시키고 지역에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이끌어 왔다.

'풍물'을 통한 퓨전장르를 만든 선구자들이다. 전국 최초로 한국전통 타악에 충실하면서도 전통을 재해석하는 현대작품을 창작해 민족타악 연주공연, 'Non-Verbal' 타악 퍼포먼스 예술공연단체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노동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지역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도 한다.

'한울소리'는 좀더 다양한 장르, 다양한 소재 등으로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펼친다.


상주단체로서 '한울소리' 역할

'한울소리'는 지난해 시행한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돼 '학산소극장'에서 활동한다. 주로 전국에서 일을 하던 이들이 지역에 자리를 두고 상시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타악퍼포먼스 자체가 단발성·이벤트성 공연 성격을 강하게 띠기 때문에 상시공연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장르에 비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한 레퍼토리를 오랫동안 공연한다는 건 더욱 어렵고요. 지난해 학산소극장 상주단체로 선정되면서 타악퍼포먼스를 통해 지역 퓨전예술문화를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박창규 대표의 말이다.

상주단체로 있으면서 상시공연기획 고충을 덜어 한결 짐을 덜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처음 '한울소리'를 시작한 곳이 남구로 '남구 학산문화원 내 학산소극장 상주단체로 됐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처음 한누리라는 동아리 단체로 출발한 한울소리 고향은 인천 남구입니다. 그때부터 줄곧 이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이렇게 성장해 왔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갑니다. 그런데 상주단체 역시 학산소극장 소속단체로 됐지요. 정말 좋았습니다." 박 대표는 '한울소리' 고향은 남구란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공연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학산소극장에서 상시공연을 진행하면서 관객들이 어려움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데 자극을 받아 창작에 더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 최초의 타악퍼포먼스 공연

'한울소리'가 성장한 데에는 박창규 대표가 중심에 있다. 누구나 익숙한 데 손이 가기 마련이다. 먹는것, 읽는것, 듣는것 역시 그러하다. 그렇기에 귀에 익숙하지 않은 풍물이나 전통음악에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박 대표가 이런 풍물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예술문화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은 지 벌써 20여년이다.

처음 풍물을 접했을 때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풍물을 접한 게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생활을 할 시점이다. 서울 출신의 인천 활동가 '한광대' 풍물패가 용현성당에서 강습회를 열 당시 형인 박헌규씨가 풍물을 하는 걸 보고 얼떨결에 배우게 됐다고 한다. 

"용현성당 단체 안에 풍물패가 있었어요. 형이 배우고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지요. 그 당시 제가 풍물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처음 장구를 잡고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풍물을 좀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은 운동의 수단'이라는 게 그 당시 인식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졸업을 하고 난 후 지역 시민문화단체들과 손을 잡고 풍물을 했고, 1990년대 김덕수 패와 이광수 민족음악원에서도 활동했다.
 
이 영향을 받은 '한울소리'는 풍물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한누리'라는 동호회로 처음 시작했다. 전통을 통한 사회참여를 하자는 다짐으로 대중화해야 한다는 의지에 1995년 '한울소리'로 탈바꿈했다.

전국 최초로 타악퍼포머스라는 장르를 한국에 도입했다. 이것이 '한울소리'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한 도전이었다.

"제가 1990년대 처음 미국을 갔을 때였습니다. 워싱턴 근처에서 흑인전통 음악인 레게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흑인 전통음악 레게를 확산시킨 자메이카 대표가수인 밥 말리의 영향을 받은 미국 흑인들의 음악을 보면서 우리것을 어떻게 세계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풍물을 통한 퍼포먼스를 하자는 생각으로 타악퍼포먼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생소한 장르에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도전에 예술문화계는 낯설어 했지만 10여 년 만에 예술문화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서울 모터쇼에서 타악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이면서 예술문화계에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그후 '한울소리'를 모토로 한 예술단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1990년대 말 서울에서 한 모터쇼에서 타악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타악퍼포머스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전통악기와 함께 다양한 연극요소, 재미있는 소품들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타악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고 찾아 무척 즐거웠습니다." 박창규 대표에게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한울소리'는 민족타악 연주공연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접목해 '파워풀'한 공연을 선보인다. 특히 다양한 장르와 소품의 결합이 특징이다. 재즈와 협연, 관악 밴드와의 크로스오버 공연, 국악기 샘플링과 시퀀싱 작업의 국악발표회와 드럼통, 플라스틱 물통, 쇠깡통, 바가지, 쓰레기통, 기름통, 건축자재 등으로 새로운 타악퍼포먼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우리것을 세계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중국, 미국, 카자흐스탄, 대만 등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 전통을 통한 타악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 대표는 "가장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 세계적인 것으로 나갈 수 있다"면서 "우리 전통악기가 세계인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에 타악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거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타악퍼포먼스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것은 '상설공연 바람'이다.

"20여년 동안 공연을 하면서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타악퍼포먼스 공연은 주로 단발성 행사에서 오프닝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흥을 돋구는 역할을 하는 공연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러나 우리 전통음악과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는 건 가장 시대적입니다. 이런 예술문화공연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상설공연이 필요합니다."

박 대표는 새로운 장르인 '타악퍼포먼스'가 대중화하는 데에는 성과를 거뒀다고 보지만,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장기적으로 상시공연을 하는 게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재차 설명한다.

"단지 우리것을 사랑하고 우리것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져 타악퍼포먼스라는 장르가 탄생했습니다. 이 장르가 만들어진 데에는 모든 배우들의 공동창작이 있었습니다. 이런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