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리운 소녀가 엄마에서 도망칠 때

[영공주에서 예술영화 한편] 비올레타(My Little Princess , 2011 제작, 에바 이오네스코 감독)

2022-01-20     심현빈
인천in이 2022년부터 미추홀구 ‘영화주안공간’(영공주)의 예술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공간주안 심현빈 대표가 상영을 앞두거나 상영중인 영화를 선정해 매달 집필합니다. 영화공간주안은 시스템 설치·변경으로 오는 2월3일까지는 휴관입니다. 

 

2011년에 제작된 에바 이오네스코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비올레타>는 감독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에바 감독의 엄마 이리나 이오네스코는 당대 유명 사진작가로 그 엄마의 에로틱한 사진의 중심에는 4살 된 딸 에바가 존재했다. 그녀는 에바의 엄마이기 전에 철저하게 예술가였으며, 에바는 누군가의 딸이기 전에 예술가의 욕망을 채워주는 완벽한 누드모델이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는 용납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과거의 폭력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감독의 노력이 점철된 작품이다. 엄마의 피사체로 카메라 앞에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감독은 이렇게 카메라 뒤에 섰나 보다.

영화의 주인공 한나는 비올레타의 엄마다. 예술을 한답시구 들락거리다 어느 날 문득 딸을 본 한나는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면서 공주 옷을 입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올레타 만한 모델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딸도 모델 놀이를 좋아한다 생각하고 노출 정도가 점점 높아지는 작업을 장소를 불문하면서 자행한다.

딸인 비올레타는 가정에 관심 없는 엄마가 많이 그리운 소녀다. 그런데 어느날 인형 놀이 한번 해 준 적 없는 엄마의 사진 속 모델이 되는 것이 엄마 곁에 함께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엄마가 하라는 건 뭐든 다한다. 하지만 비올레타의 사진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고, 엄마의 요구는 비정상적이며 딸인 자신의 존재가 피사체일 뿐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증오로 변한 사랑은 엄마를 거부한다.

비올레타의 증조할머니는 한나의 출생비화를 알고 있지만 증손녀를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기도로 따뜻하게 보살피고 있다. 그런 증조할머니와 함께 하는 비올레타는 정서적으로 비교적 평안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일 엄마의 사진 모델이 되지 않았다면 증조할머니의 보살핌 만으로도 보통의 어린아이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증조할머니의 기도는 한나를 보면 ‘악마로부터 구해 주소서’라는 기도로 바뀐다. 성(聖)스러움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어른들의 서로 다른 신념은 기도하는 거실과 사진 찍는 작업실로 공간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 공간 속 다면경(多面鏡)에 보이는 한나는 티아라를 머리에 쓴 비올레타의 뒤에서 거울 거울 마다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비올레타>에서 연기한 배우들은 존재만으로 위대한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12세 신인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이다. 두 주인공은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으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연기 대립을 펼친다. 특히 어린 아나마리아의 도발적인 연기는 예술을 핑계 삼아 딸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보이게 하는 왜곡된 욕망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비올레타>는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의 데뷔작이며, 스크린을 폭발시키는 신인 배우의 탄생작이다.

엄마 한나의 이자벨이야말로 작품마다 강렬한 존재감으로 장르를 휘몰아치는 연기가 인상 깊은 배우로 칭송되고 있다. 고혹스런 매력과 차가운 카리스마 사이에서 보여주는 비정하고도 무심한 모성애를 뭐라 탓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든다. 어쨌든 두 배우의 숨이 멎을 것 같은 미친 연기 호흡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관람이 될 것이다.

비올레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평온한 공간은 증조할머니와 함께 없어져 버렸다. 영화의 마지막에 비올레타는 카메라를 등지고 들판을 달린다. 우리는 상상하면서 꿈을 꾸어 준다. 엄마를 도망치는 비올레타의 새로운 길에 희망이 자리잡기를 빌어 본다.

 

** 영화공간주안은 2월2일까지 예술영화관 통합전산망 구축으로 인해 휴관 중입니다. 2007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교체되는 새로운 통합전산망의 구축 절차가 복잡해서 오래도록 휴관을 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영화공간주안은 2022년 2월3일(목)부터 개관하며 <비올레타>도 2월 3일(목)부터 상영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