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 스틸>이 주는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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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얼 스틸>이 주는 '따뜻함'
  • 김정욱
  • 승인 2011.10.2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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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 김정욱(영화공간주안/주안영상미디어센터 프로그래머)


<리얼 스틸> 중에서

<트랜스포머>(감독: 마이클 베이)를 통해 최근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흥행 장르인 SF 로봇 영화가 또다시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시장에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바로 <리얼 스틸>(감독: 숀 레비)이다. 덥수룩하게 얼굴을 뒤덮던 수염과 손등의 날카로운 칼날로 기억되는 <엑스맨>(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울버린, 휴 잭맨은 짧은 헤어스타일로 로봇 조종기를 손에 쥔 전직 복서 찰리 켄튼이 되어 돌아왔다.

이야기 구조는 이렇다. 과거 챔피언 타이틀 도전에서 실패한 찰리는 별 진전 없이 로봇 파이터의 프로모터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고철 덩어리 로봇 '아톰'을 만나게 되고, 아들 '맥스'와 함께 아톰을 최고의 파이터로 만들어낸다. 철없는 아빠와 애 어른인 꼬마 아이, 그 사이에는 로봇이 있다. 좌충우돌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 부자는 로봇 아톰을 통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고철 로봇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파이터가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어느 영화에선가 본 적 있는 구조가 아닐까? 그렇다.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영화 <록키>와 <챔프>의 적절한 조화가 보인다. 고철 로봇 아톰의 초라한 납땜 자국에서는 배고픈 복서 '록키 발보아'가 보였고, 아버지와 아들의 가슴 뭉클한 사랑의 모습에선 <챔프>의 감동이 스며 나왔다. 거기에 뮤지컬계 신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다소 덜 유명한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의 경주용 전차들을 로봇으로 바꾸기만 하면 똑같은 영화가 되는  <리얼 스틸>이 <나는 전설이다>로 유명한 소설 작가 리차드 매드슨이 1956년 발표한 단편소설 <스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며, 그저 또 하나의 비빔밥식 베끼기 영화는 아니라는 묘한 위안을 준다.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간 할리우드에서 흥행한 몇 편의 영화들을 녹이고,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이 조금 작게 등장하는 것뿐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 흥행했던 영화들 대부분이 그랬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느 영화에서 나온 듯한, 혹은 이미 익숙한 구조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 너무나도 뻔한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마도 가족드라마의 상투적인 이야기를 링에 오르는 로봇이란 독특한 소재와 절묘하게 조합한 부분일 터이다.

최근 볼 수 있었던 SF 영화들은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 발전을 보여주며 파괴된 도시, 인간의 최후를 그린 전쟁과 전투, 로봇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리얼 스틸>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로봇을 바라본다. 겉은 로봇이지만, 행동은 사람처럼, 우리와 같은 눈높이의 또 다른 생명체마냥 그려놓고 있다. <트랜스포머>에서 보여준 거대한 로봇의 액션과 가상의 현실이 아닌, 2020년이라는 멀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마치 현실과 같은 느낌이었다.

웅장한 그래픽으로 시작할 줄 알았던 영화 초반부는 노을이 지는 평야를 배경으로 흐르는 컨트리 음악으로 관객과 만난다. 무언가 장르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느낌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드라마를 로봇 액션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비주얼의 압도적 힘을 무기로 드라마와 캐릭터를 포기했던 몇몇의 블록버스터와는 다르게 각 인물들의 감성과 이야기의 완급 조절에 신경을 썼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관객과 주인공의 감정을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태어나자마자 아빠에게 버림을 받았던 맥스, 성공하지 못한 전직 복서 찰리, 그리고 고철 폐기물 더미에 파묻혀 있던 오래된 로봇 아톰. 세상에서 버려진 이 모든 인물들은 관계를 회복하고 성공의 기쁨을 모든 이들과 함께 한다.

흥행영화의 비빔밥식 짜깁기는 비단 할리우드만의 제작공식은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원빈'이 액션배우로 자리매김한 <아저씨>(감독 이정범)는 다코타 패닝과 덴젤 워싱톤의 <맨 온 파이어>(감독: 토니 스콧)를,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은 <아포칼립토>(감독: 멜 깁슨)를, 흥행에 패한 송강호, 신세경 주연의 <푸른 소금>(감독: 이현승)은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와 <레옹>의 기본 줄거리와 인물, 심지어 장면 하나하나를 그대로 베껴내었음에도 큰 흥행이나 화제를 불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결과적으로 <리얼 스틸>은 거대 예산을 쏟아 부은 영화에서 쉽게 지적되는 정서적 메마름, 시나리오의 부실함을 기존 여러 작품에서 쓰였던 감동의 가족 드라마로 적절하게 녹여냈다. 어찌 보면 단순히 2시간짜리 로봇 오락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삶이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시선, 베껴도 베껴도 녹슬지 않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와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트랜스포머>를 통해 로봇의 액션은 충분히 봤지만, 인간적 정서와 눈높이로 사이즈를 줄인 <리얼 스틸>은 우리가 로봇에게 상상하던 많은 것들을 커다란 스크린에서 직접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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