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 / 공인노무사
극우 편향, 노동조합 혐오, 패륜적 언사를 반복해 ’망언 제조기‘란 오명을 가진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파행으로 끝났다.
고용노동부장관으로서 자질과 업무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청문의 자리가 아닌 요식절차임이 분명했다. 그 마저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파행의 발단은 “일제 치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은 상식”이란 궤변을 펴면서다.
‘어느 날 눈뜨니, 내 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일본인이었다’는 김 후보자의 억지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꼼꼼하게 논박됐으니 생략하자. 다만 요즘 특히 회자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평가하면 일본인이란 망언에 수긍할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는 사실만은 짚고 가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매국적 사고만으로도 김 후보자는 어떠한 공직도 맡을 자격이 없음이 드러났다. 정부의 고용·노동 행정을 총괄 집행하는 고용노동부장관직 또한 예외가 아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했고, 고용·노동 분야의 전문성 부재까지 확인됐는데, 장관직을 넘본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노동약자’ 보호를 언급했지만, 정작 그는 노동약자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실질적으로 고용한 진짜 사장에게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요구하면, 외주·위탁·위임을 줬다는 이유로 가짜 사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배달을 독촉하는 관리자에게 “개처럼 뛰고 있긴해요”라는 카톡 문자로 답했던 41살 가장인 쿠팡 택배기사. 그가 지난 5월 과로사로 의심되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등졌다. 고인의 사망에도 쿠팡측은 고인이 개인사업자란 이유로 보상은커녕 어떤 사과 입장도 내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지난 2020년 과로사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사망원인에 대해 쿠팡은 ‘과도한 다이어트’라고 주장했다.
쿠팡만 그런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재판결과가 나왔다. CJ대한통운은 판결에 따라 택배기사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도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위법을 자행하며, 지금도 부당노동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학습지노동조합, 화물연대·레미콘 노동조합 등 특수고용직 노동조합 대부분이 헌법상 노동3권을 박탈당한 채 고초를 겪고 있다. 이들 모두 개인사업자, 대리점과의 고용관계,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이란 굴레로 노동자성을 부정당했다.
노동 정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들 간접고용·특수고용직의 근본 문제를 안다. 이들의 노동기본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할 실효적인 수단이 ‘노란봉투법’이란 걸. 실제 사장과 바지 사장을 구별해 실제 사장에게 고용에 따른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 이게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자신의 다짐조차 같은 자리에서 부정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 공시제 결과’(2023년 3월 현재)를 분석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82개 대기업 집단 소속 기업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72만명이다. 이들 대기업집단 소속이 아닌 고용형태 공시제 적용대상인 300인 이상 기업에서 종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도 29만명이다. 300인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100만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여기에 300인 미만 기업에 종사하는 파견·용역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 학습지교사·캐디·화물차기사 등 특수고용직, 택배·대리운전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 등이 더해지면서 2백만명 이상이란 추론이 나온다.
2백만명 이상되는 노동약자의 처지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노동행정, 그게 김 후보자가 구상하는 노동행정의 실체다. 게다가 김 후보자는 고용노동부장관을 하겠다면서 명목임금과 실질임금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도 보였다. “우리나라는 임금이 상승하고 있고, 실질임금은 오르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월급은 동결 또는 쥐꼬리만금 올랐는데, 물가는 폭탄”이란 푸념이다. 임금은 쥐꼬리만큼 상승한 반면 물가가 폭탄이면, 실질임금이 떨어졌다는 건 상식이다. 유튜브로 5억원 이상씩 벌었던 김 후보자에겐 명목임금과 실질임금을 구별할 실익 자체가 없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 짐작된다.
이외 노사관계를 포함해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편견, 적개심으로 채워진 김 후보자의 반헌법·반노동 망언은 차고 넘친다. 구체적 내용이 궁금하면, 구글 검색사이트에서 ‘김문수/사건사고 및 논란’이라고 써보라. 그리고 엔터키를 치면, 툴바를 한참 내려야 할 만큼 내용 자체가 방대하다. 한참을 읽어야 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에게 후보직을 사퇴하란다고 들을 사람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김 후보자에게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도 해야 하는 일이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윤석열 정권 들어 최악의 인사참사, 구제불능 반국가인사’라는 야권의 비판을 수용, 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 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까지. 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