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추석 마니산 첨성단에 올라 - BGM ‘봉우리’(김민기)
아직 이렇게 더운데 벌써 추석이다. 명절을 맞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연휴를 보낸다. 필자는 그동안 못다 한 쉼을 가지기로 했다. 밀린 잠을 자고 쌓아둔 집 안 청소를 한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운동 삼아 마니산에 오르기로 한다. 마니산 꼭대기에 오르면 첨성단이 있다. 예로부터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을 빌며 명절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산에 가면 항상 사람들이 쌓아둔 돌탑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지만, 오늘은 적절한 돌을 주워 올려본다. 크고 작은 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빌어본 소원 중 과연 이뤄진 게 몇 개나 있나 싶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비슷한 내용의 소원만 빌게 된다.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일상에서 꼭 필요한 마음가짐 같은 것들. 간절하게 빈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원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소원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뤄지면 더 이상 소원이 아니니까...
걸음걸이마다 다르겠지만 쉬어가며 슬슬 올라가면 정상까지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4년 전 처음 마니산을 올랐을 때 계단이 많은 길로 등산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무릎도 안 좋아서 유난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니산이 전국에서 가장 기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기분 탓인지 기력이 없을 때 마니산에 오르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출과 일몰 산행도 풍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가을에 한 번 시도를 해봐야겠다.
산에 오르는 동안 다양한 감각이 깨어진다. 발바닥 표면에 스치는 흙과 바위, 풀의 감촉, 진한 녹색의 향기,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나무와 풀과 여러 생명. 가빠지는 숨과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모든 순간을 천천히 알아차리며 한 걸음씩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마니산에는 산을 지키는 고양이들도 많다.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지. 무리 지어 나타나기도 하고 가는 길 뒤로 졸졸 쫓아오기도 한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면 첨성단이 있다. 참성단의 제단은 한민족만이 갖는 고유한 형태로 자연석들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방단의 이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강화의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이기 때문이며, 강화도의 고유 지명인 마이(摩利)·혈구(穴口) 등은 하늘과 인연이 깊다고 전해온다.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8·15 광복 후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이에 따라 참성단도 민족의 성지로 이해하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오늘 칼럼에서는 얼마 전 별세하신 김민기님의 ‘봉우리’를 추천한다.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마니산 봉우리에 올라 모든 이들이 평안하고 행복한 추석이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