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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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사자
  • 박병일
  • 승인 2011.11.1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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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의 자동차 이야기] 푸조(Peugeot)

총알을 맞고도 달릴 수 있는 차

차 숫자를 보는 것 외에 저건 ‘틀림없는 푸조야’라고 한 눈에 척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은 고민할 것 없이 차의 앞부분, 즉 라디에이터 그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곳엔 푸조의 엠블럼인 사자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

또 총알을 맞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차가 있을까?

1980년대 초, 레바논 내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세계 각국 외교관들은 우왕좌왕하며 차를 몰고 피난을 갔는데, 도중에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수류탄과 총알을 맞고도 차들이 폭발하거나 뒤집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외교관이 탄 차만은 총알을 맞고도 끄떡없이 달렸다. 그 차가 바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사자’라 불리는 푸조였던 것이다.

프랑스 최초의 자동차
 
아르망 푸조로 시작해서 가문의 대를 이어 내려온 푸조는 지금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를 많이 만들어 냈다.

푸조는 에펠탑이 세워진 1889년 파리 국제 무역 박람회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푸조는 불쌍한 말들의 다리를 묶어 놓으려는 악마의 발명품이다!”

그 당시 프랑스 신물들은 이렇게 떠들어댔다.

세계 역사상 벤츠 다음 두 번째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자동차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다가올 자동차 시대를 정확히 내다본 아르망 푸조의 남다른 감각 덕분이었다.

푸조 자동차 회사를 세운 아르망 푸조는 대대로 공장을 경영해 오던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는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앞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영국을 다녀온 후,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며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1889년, 아르망은 증기 자동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어 다음해인 1890년에는 독일의 다임러에게 산 휘발유 엔진으로 네 바퀴 자동차를 만들었다.

자전거 바퀴를 단 첫 자동차

1890년에 등장한, 휘발유 엔진을 단 푸조의 첫 자동차는 길이 2.5m, 무게 250kg에 앞뒤 좌석이 마주보게 만들어진 4인승 자동차였다. 이 자전거 바퀴를 단 첫 푸조는 2기통, 2.3마력으로 시속 16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자동차 만들기에 성공한 아르망은 첫 자동차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1891년 어느 날, 아주 기뿐 소식이 들려 왔다. 프랑스 전국 자전거 경주 대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래, 푸조로 경주에 참가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대회 본부에서 푸조를 받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 달리는 기계는 아주 위험할 것 같군요. 안됐지만 귀하의 차는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르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좋습니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는 대신 선수들을 감독하는 자격으로 따라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푸조는 파리에서 브레스트라는 항구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2,000km 경주에서 자전거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드디어 경기가 열리는 날.

“애걔, 저것도 자동차야?”

“나 같으면 창피해서 안 따라온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푸조를 비웃었다. 명색이 자동차라는 것이 소리만 요란할 뿐, 발로 굴리는 자전거보다 느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푸조는 보란 듯이 총 2,000km의 거리를 달려 무사히 파리에 골인했다. 총 139시간, 6일 밤낮을 달렸으나 끄떡 없었다. 눈이 휘둥그래진 파리 시민들은 ‘푸조 만세!’를 외쳐댔다.

이 자전거 대회 덕분에 푸조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얼마 후 다섯 대의 주문이 들어왔고, 다음해에는 스물아홉 대의 주문을 받았다. 첫 출발로는 대성공인 셈이었다.

1894년에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 경주 대회가 프랑스에서 열렸다. 전 유럽에서 가지각색의 자동차들이 몰려들었다. 증기 자동차, 휘발유차, 인력차, 압축 공기 자동차, 전기 자동차….  물론 아르망도 참가했다. 이 세계 최초 자동차 경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공원의 담을 모조리 부숴 놓은 차가 있는가 하면, 잔디밭으로 뛰어든 차도 있었고, 심지어는 인도로 뛰어들거나, 레스토랑으로 용감무쌍하게(?) 돌진한 차도 있었다. 어쨌든 총 102대의 자동차가 참가한 그 대회에서 푸조는 우승을 했고, 이로써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자동차 사업에 자신이 생긴 아르망은 1897년, 아버지의 공장을 떠나 정식으로 푸조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다임러에게 사오던 엔진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천재적인 자동차 설계자 부가티가 만든 ‘베베’.

1912년, 푸조는 귀여운 소형 자동차 ‘베베’를 세상에 내놓았다.

베베는 ‘자동차 설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부가티가 설계한 차다. 두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자동차는 855cc, 6마력의 소형차로 시속 45km로 달릴 수 있었다.

‘작고 귀여운 아기’라는 뜻의 ‘베베’는 당시로서는 최신식 디자인인 데다가 어른이나 아이, 남자나 여자 모두 쉽게 몰 수 있는 획기적인 차였다. 1년 만에 3천 대가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푸조는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자동차 경주에도 열심히 참가했다. 자동차를 가장 확실히 선전할 수 있는 방법은 자동차 경주에 참가해서 우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르망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참가하는 족족 우승을 거두어 푸조의 명성은 날로 드높아 갔다. 그럴 즈음, 제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다. 아르망이 죽은 뒤, 푸조 자동차 회사는 그의 아들 장 피에르 푸조에게 이어졌다.

품질 제일주의 100년

1920년대에 이르자, 프랑스에는 스무 개나 되는 자동차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저마다 최고가 되려고 심한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던 푸조와 함께 프랑스 자동차 업계의 삼총사라 불리는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르노와 시트로엥이었다. 1920년대 이후 푸조는 한때 르노에 밀리기도 하고, 시트로엥의 획기적인 차에 뒤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다행히 푸조 203, 402, 403  같은 새 모델들을 내놓아 사랑을 받으며 튼튼한 회사로 자라났다.

지금의 푸조는 그들 두 회사를 제치고, 프랑스 최대의 민간 자동차 회사로 자리 잡았다. 르노는 나라가 운영하는 국영 기업이 되어버렸고, 시트로엥은 푸조에 합쳐지고 말았지만, 푸조는 현재 자동차 생산 대수 세계 6위, 유럽 2위를 기록하며, 르노와 선두를 다투는 프랑스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다.

푸조가 이처럼 클 수 있었던 것은 대대로 푸조의 회장들이 검소하고 착실하면서 고집이 쌨기 때문이었다.

푸조는 결코 사치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은 대신 믿어도 된다. 지금까지 확실하고 틀림없는 차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처음 타도 오랫동안 길들여 온 것처럼 편안하고, 운전 기기들이 손과 발에 착 달라 붙는 차, 푸조는 그 이름만 들어도 ‘사자처럼 강인한 힘과 품질, 신뢰’가 떠오른다. 아르망 푸조 때부터 항상 푸조는 한순간 인기보다도 품질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1939년형 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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