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직장맘'들의 애로(隘路)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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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 '직장맘'들의 애로(隘路)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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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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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제의 문제점과 필요성

최근 들어 '유연근무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정부는 더 많은 사람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올 하반기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민간부문으로까지 유연근무제를 확산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유연근무제의 문제점과 필요성,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인천에 사는 공무원 김모(32)씨의 아침은 늘 바쁘다.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남편은 늘 이른 새벽 먼저 집을 나서고, 김씨는 홀로 남아 한 살짜리 아들의 젖병과 간식, 기저귀 가방 등을 챙기며 자기 출근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모든 채비를 마친 후 김씨가 향하는 곳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보모의 집. 끝내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아이와 한판 실랑이를 벌인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걸린다.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이지만, 김씨는 사람 가득한 버스에서 앉을 자리 하나 찾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노동부는 하루 5시간만 일하면서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지원센터 상담직원 공고를 냈다. 원서 접수 기간은 고작 1주일. 하지만 공고가 나간 후 문의가 빗발쳤다. 그리고 90명 모집에 무려 2474명이 원서를 냈다. 평균 27.5대 1의 경쟁률이다. 지원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연령별로는 30대가 43.1%,  40대가 27.4%로 가장 많았다. 학력도 높았다. 60.5%는 대졸자였고, 8.7%인 216명은 석사였다. 심지어 박사도 3명 포함됐다. 

노동부는 이런 결과에 대해 "가족을 돌보면서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안정적·전문적 일자리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출산·육아 문제 등으로 고민이 많은 30~40대 고학력 경력단절여성에게 '하루 5시간 정년보장직'은 매우 매력적인 일자리로 보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때론 야근까지 해야 하는 공무원 김씨 역시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하루 5시간만 일하면서 안정성이 보장되고, 또 나의 경력까지 살릴 수 있는 직장이 있다면 지금 당장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연근무제 확산 방안'과 관련해 전반적인 고용의 질을 떨어트림은 물론 비정규직 일자리만 더욱 양산할 것이라는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도 높다.

강경란 전국여성연대 사무국장은 "여성들도 제대로 된 양질의 일자리를 원한다"라며 "정부가 얘기하는 단시간 일자리는 지금도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단시간 일자리라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인 셈"이라며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와 함께 직장내 보육정책, 정규직과의 격차 해소 등 제도적 보완책"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노조는 "단시간(시간제)근로자는 여성으로 채워질 것이 뻔하고 좋은 일자리로서 여성의 일자리를 오히려 없애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여성의 주변화, 빈곤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연근로제는 무늬만 정규직일 뿐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 일자리만 더욱 양산시킨다"며 "여성의 전반적인 고용의 질을 떨어트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민주노총도 "정부가 내놓은 유연근무제는 여성고용의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라며 "남녀 간 고용격차를 더 악화시키고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을 양산할 공산이 크다" 말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억제 축소하고 임금격차 등 차별을 해소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위해서는 육아문제 등을 여성이 아닌 사회 전체 차원에서 책임지는 복지증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102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공동기획단'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유연근무제 및 낙태단속강화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가정과 직장,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명에도 못 미친다. 이대로 가다간 인구가 늘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어렵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런은 현상에 대해 취업난,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사교육비 부담 등 다양한 이유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임기에 있는 여성들이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 가정과 병행하기 힘든 근로 환경을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황수경 박사(2009)에 따르면 가구 유형을 기준으로 할 때 개인의 생애경로는 미혼에서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 미취학 자녀를 둔 부부, 7-12세 자녀를 둔 부부, 청소년 자녀를 둔 부부로 구분된다. 또 그 이후에는 18세 이상 자녀와 동거하는 부부, 동거자녀가 없는 중년부부, 동거자녀가 없는 고령부부 등으로 나뉜다. 각 단계별로 개인이 처한 상황이 달라지는 만큼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생애경로에 따른 근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근무형태는 이런 단계와 상관 없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일에 써줄 것을 강요 받는다. 특히 미취학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다른 단계의 가구보다 가정에 대한 시간이 더 필요한데도 노동의 형태나 강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구직자 중 46%는 시차출근제나 재택근무, 단시간근로 등의 탄력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취업하기를 원하고 있다. 또 출산·육아의 부담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재취업시 주 5일 근무에 하루 5시간(오전 10시~오후 4시) 정도 근무하는 직장을 가장 희망하고 있다. 회사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현실에서 이런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 예로 간호사의 경우 24시간 운영되는 병원 특성상 낮 근무는 물론 밤 근무 또한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는 출산과 육아 등 20~30대의 가정 생활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다. 실제로 대한간호협회(2007)는 현재 쉬고 있는 간호사 중 약 60%가 20~30대라고 밝히고 있다. 보통 이 연령대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을 담당해야 하는 시기임을 생각할 때 현재와 같은 노동 형태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외국에선 상당수 기업이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바꾸고 있다. 예컨대 일본 기업 기린맥주는 직원들에게 자녀가 3살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 '하루 5시간 근무' '정해진 근무 외 면제' 등의 선택권을 주고 있다. 소니의 경우도 '육아 유연(Flexible) 근무제도'를 도입해 육아휴직기간 중 본인이 원할 경우 재택근무를 통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은행 FTB(First Tennessee Bank) 역시 시차출퇴근, 교대근무, 파트타임 등의 유연근무제도를 통해 직원들이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에게도 약간의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은 야간근무까지 포함해 3교대로 돌아가던 간호사 근무를 오전·오후 2교대 근무로 바꾸고, 오후 11시~오전 7시를 담당할 야간전담인력을 따로 채용했다. 불규칙적인 야간교대근무로 인한 간호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것이다.

또 한국 IBM은 파트타임 정규직원 제도를 도입해 기존 풀타임 정규직원이 자녀양육 등의 필요가 생겼을 때 특정기간 동안 파트타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리후생은 정규직과 동일하며, 급여는 근로시간에 비례해 적용한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아직 극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은 개인의 생애경로와 무관한 경직된 형태의 근무형태를 보이고 있다.

유연근무제로 일자리를 나눈다?

단시간근로 등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가 가져올 효과는 비단 가정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일하는 시간을 줄여 육아 등에 더 잘 신경쓰게 해주는 대신, 줄어든 시간만큼을 다른 사람이 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즉, 전 사회적인 일자리 나누기 효과이다.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연간 2316시간을 일하고 있다. OECD 평균 1768시간보다 1.3배 정도 많은 양이다. 반면 2008년 기준 주 30시간 미만을 일하는 비율은 OECD 평균이 15.5%지만, 우리는 9.3% 수준이다.

여성의 격차는 좀더 커 단시간 근로의 OECD 평균은 25.3%인 반면 우리는 13.2%에 그치고 있다. 15~24세 청년 역시 OECD 평균은 28.9%, 우리는 18.4% 정도이다. 선진국의 경우 단시간 근로 등을 통해 여성, 청소년 등의 전체적인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은 단시간근로자 비중을 높임으로써 고용률 향상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다. 재택근무, 스마트 오피스 등의 공간을 변화시킨 유연근무제는 근로자들의 출퇴근 시간을 줄여줄 뿐더러 탄소배출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미국의 컴퓨터 제조업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은 IT를 기반으로 재택 및 스마트오피스 등에서 원격근무를 실시함으로써 2만9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 또 영국의 전신회사 BT는 원격근무로 매년 92만 7369톤의 이산화탄소 줄이기를 실천한다.

 
 
우리는 '풀타임 정규직' 근무 형태에 익숙하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 등에 대응하는 해법을 찾는 여러 나라의 전략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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