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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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자존심
  • 박병일
  • 승인 2011.1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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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명장의 자동차 이야기] 사브(SAAB)

멋진 묘기를 보인 차

오토바이도 아닌 자동차가 두 바퀴로 달리고, 최고 속도로 달리다가 360도 회전을 한다? 또 자동차 네 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린다?

생각만 해도 대단한 묘기 대 행진 일 듯 하다. 주인공은 사브와 다섯 명의 카 레이서들이었다. 물론 다른 차들로도 그런 묘기를 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처럼 힘든 묘기를 가장 수월하게 해 낼 수 있는 차는 사브밖에 없다. 사브가 드라이빙 쇼에서 보여준 묘기는 모두 열가지 정도였다. 자동차가 두 바퀴로 달리는가 하면, 네 대의 차가 번갈아 달리면서 깃대 사이를 빠져 나가기도 했다. 또 함께 달리던 두 대의 자동차 중 한 대가 180도 회전했는데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다 동시에 360도 돌기, 차 네 대가 범퍼를 맞대고 줄지어 깃대 돌기, 최고 속도로 달리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도 안전하게 정지하기, 최고 속도로 달리다 180도로 돌면서 안전하게 주차하기 등등이다.

이 멋진 묘기 중에서 박수를 제일 많이 받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두 바퀴로 달리기였다. 자동차가 넘어지지도 않고 두 바퀴로 달리는데, 그것도 차가 쌩쌩 달릴 때 조수석에 탔던 카 레이서가 겁도 없이 창문을 열고 차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창문을 빠져나온 카 레이서는 차 위로 올라가더니 달리는 차 위에 떡 버티고 서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박수 칠 생각도 못하고 조마조마 가슴을 졸였다. 묘기가 완전히 끝났을 때에야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쉬며 우레 같은 박수를 퍼부었다.

스웨덴의 명차

도대체 이런 기이한 묘기를 펼친 자동차 사브는 어떤 차일까?

사브는 노벨상과 바이킹 그리고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나라, 스웨덴의 명차로 산과 호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겨울 왕국의 자존심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으로 독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일본 그리고 스웨덴이 꼽히는데, 이들 일곱 나라의 자동차 회사 중 사브의 규모가 제일 작다. 한해동안 만들어지는 사브는 겨우 십오만 대뿐이다. 사실 사브는 그렇게 멋있거나 아름다운 차는 아니다. 롤스로이스만큼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도 않으며, 벤츠처럼 멋있는 차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란 사실이다. 사브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자동차 업계의 작고 매운 고추다. 제 2차 세계 대전 전후로 뒤늦게 탄생한 차 중에서는 일본의 혼다와 쌍벽을 이룬다.

사브의 가장 큰 특징은 얼음판, 흙탕길 같은 악조건에서 잘 나타난다. 얼어붙는 추운 날씨, 울퉁불퉁한 험한 길도 상관하지 않고, 마치 깊은 산속을 거침없이 헤집고 다니는 멧돼지처럼 사브는 잘 달린다.
또한 사브는 고장이 적고, 눈바람 속에 세워 놓아도 잘 녹슬지 않는다.

1971년, 사브는 눈 오는 밤길에 대비하여 헤드라이트에 와셔와 와이퍼를 처음으로 달았으며, 다음 해에는 충격 흡수 범퍼도 달았다.
 또한 사브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때 무엇보다 안전에 제일 신경을 쓴다. 항공기를 설계할 때 사용하는 슈퍼컴퓨터, 크레이로 수백 번의 안전 점검 실험을 거쳐야만 사브 모델 하나가 탄생할 정도다. 1977년, 미국의 충돌 테스트 기준을 가뿐히 통과한 것만 보아도 사브가 얼마나 안전한 차인지 잘 알 수 있다.

사브가 강한 이유

스웨덴은 한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만큼 날이 흐리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의 나라다. 산이 높고 험한 데다 겨울 날씨는 끔찍할 정도로 춥다. 영하 30~40℃를 오르내리니 살이 얼어붙을 만도 하다. 이처럼 지독한 날씨와 험준한 땅에서 견디려면 스웨덴의 자동차는 당연히 안전하고 튼튼하고 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브는 볼보와 함께 비포장도로에서 네 바퀴 굴림차 못지않게 잘 달린다.

또 하나 사브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브는 원래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비행기, 그 중에서도 군용기를 만들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비행기에 쓰는 강판은 자동차에 쓰는 강판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데도 사브는 거기에다 여러 번 두터운 칠을 했다. 콘크리트에 박는 못으로 긁어도 흠이 생기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사브는 헌 차도 새 차 못지않게 튼튼하다. 뿐만 아니라 이제 사브는 안전을 넘어 환경까지 생각하는 자동차로 변신하고 있다. 못 쓰게 된 차의 부품들을 재활용하여, 현재 사브의 재활용률은 90%나 된다. 또한 사브는 공기를 더럽히지 않는다. 사브가 내뿜는 배기가스는 영국 런던의 공기보다 깨끗할 정도이다. 이렇게 꼼꼼하게 만든 차의 80%가 외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이 차는 특히 세계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이름의 유래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그 이름을 보통 회사를 처음 세운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그렇다면 사브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사브(SAAB)는 스벤스카 에어로플랜 AB(Svenska Aeroplan AB)이 머릿글자를 딴 것인데, 스벤스카 에어로플랜이라는 복잡한 이름은 ‘스웨덴 항공기 회사’란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브는 처음에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항공기 회사였던 것이다.

1937년에 생긴 사브는 곧이어 터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미국과 독일, 두 나라에 항공기를 팔아 큰돈을 벌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사브는 더 이상 군용기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비행기 만드는 기술을 자동차에 써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1943년, 사브 항공기 회사는 자동차 회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브의 첫 자동차는 사브92였다. 2기통, 764cc 엔진에 최고속도 105km의 사브 92는 시대를 앞선 유선형 차였다. 유선형 차는 크라이슬러사에서 제일 처음 만들었지만, 정확히 공기 역학적인 관계를 계산한 것은 아니었다.

사브 92는 가볍고 튼튼했다. 게다가 좋은 차가 다 그렇듯이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체가 가라앉아 잘 달렸다.

소형 승용차 사브 92는 곧 안전성과 독특한 개성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사브는 세계 자동차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 후, 1969년에는 버스와 트럭을 주로 만드는 스카니아-바비스와 회사를 합쳤고, 1990년에는 미국의 GM과 합작하여 사브 오토모빌 AB를 세웠다. 지금 사브는 사브 오토모빌 AB에서 만들고 있다.

오늘날 사브는 스웨덴에서 볼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기업이다.

상반신은 독수리, 하반신은 사자의 모습을 한 ‘그리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새와 짐승의 왕이다. 이 위엄 있는 동물에 왕관을 씌운 사브의 엠블럼처럼 사브가 모든 자동차들이 왕이 될 날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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