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매립된 '선학동 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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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매립된 '선학동 농지'
  • 박병상
  • 승인 2011.12.08 13: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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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올 가을 마지막 추수를 마친 선학동의 농지가 매립되었다. 머지않아 그곳에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위한 하키와 볼링경기장이 세워지고, 그보다 훨씬 넓은 면적은 서울 올림픽공원 비슷한 체육공원으로 변모할지 모른다. 천덕꾸러기 농지에서 근사한 체육공원으로 괄목상대하는 걸까. 많은 이는 좋아졌다고 말할 것인데, 진정 좋아진 거로 치부해도 되나. 후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하나 더 짓는 건 아닐까.

우리 국회가 한미FTA 협약을 상식에서 어긋난 방식으로 통과시킨 뒤, 청와대 수장은 존립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손실을 입을 농민을 향해 수출해 돈 벌라고 다독였다. 우리나라에서 농작물을 수출한다고? 대통령은 우리 농촌에서 식량을 자급 이상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식량 자급은 쌀을 빼면 달랑 5퍼센트 쌀을 포함해도 26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상식조차 없는 건 아닐까. 우리가 받는 밥상에 올라오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수출이라니. 갑자기 후손에게 미안해졌다. 국가의 진정한 독립은 식량 자급에서 비롯된다던 한 세대 전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달라도 한참 다르지 않은가.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 사이에 잔디와 조경용 나무를 심어놓으면 눈이 잠시 즐거울 수 있지만, 생명체인 우린 먹어야 산다.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에 자동차와 건물과 공장이 늘어날수록 맑은 공기가 중요해진다. 근교의 농지는 시민에게 신선한 식량과 맑은 공기를 제공하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유서 깊은 도시들은 주변의 농지를 보전할 뿐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텃밭을 임대해준다. 주말에 식구나 친지하고 텃밭으로 가서 농사를 짓거나 화초를 키우는 즐거움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진다고 그들은 말한다.

인천에 하키를 즐기는 인구가 몇이나 될까. 아니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얼마 되지 않는 하키 인구를 위해 굳이 새 경기장을 지어야 할까. 넓은 운동장을 가진 인천의 대학에 비용을 지원해 아시안게임을 대비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그런 선택이 예산도 절감하고 대학도 지원하는 일석이조가 아니었을까. 인천에 최신 시설을 갖춘 사설 볼링장이 꽤 많을 텐데, 굳이 거액의 세금으로 볼링 경기장을 더 지어야 하는 걸까. 임대해서 활용하는 방법을 찾으면 안 되는 것이었나. 체육공원은 인천의 여기저기에 더러 있고 그리 붐비지 않는다. 예산이 부족해 해마다 지속하던 사업마저 규모를 줄여야한다면서 불요불급한 체육공원을 농지를 매립해 기필코 조성해야 하나.

인천시와 연수구는 원하는 시민에게 ‘상자텃밭’을 제공한다. 작은 상자에 흙을 넣고 고추나 상추와 같은 푸성귀를 재배하려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해마다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고 한다. 바람직하긴 한데, ‘상자텃밭’은 한계가 분명하다. 지속적으로 농사를 이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상자텃밭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작은 텃밭을 가꿔보고 싶어진다. 선학동의 농지는 텃밭에 목말라하는 시민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뜻에 동의하는 지주와 협의해 구입하거나 장기 임대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텃밭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제 손으로 가족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가꾸고 싶은 시민은 인천을 떠나야 한다.

콘크리트와 잔디의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방치하면 금방 지저분해지고 시민들은 이내 외면하지만 자연은 다르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들판도 항상 아름답다. 선학동에 농지 역시 생긴 이래 최근까지 그랬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도시 열섬화로 전에 없이 뜨거워지는 도시에서 시민에게 필요한 건 화려하게 꾸민 철근콘크리트가 아니다. 식량 자급률이 처참할 지경인 국가에서 농지 파괴는 무책임의 극치다. 온난화로 해외의 거대한 농지가 사막화될 위기에 있다는데, 우리는 늦기 전에 식량 자급을 최대한 도모해야 한다. 그럼에도 있는 지역의 오랜 농지를 일회용 놀이를 위해 매립한다면, 고통스러울 후손은 선조의 무책임을 용인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서구에 지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신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정부에 맡기려 애쓰는 인천의 재정 상황에서, 대안을 생각하면 어떨까. 예산과 제도의 경직성 때문에 기왕 매립한 선학동 농지에 하키와 볼링 경기장을 지을 수밖에 없더라도, 경기를 마친 뒤의 대책을 세우자는 거다.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은 하키 인구를 위한 경기장은 성남시 하나로 충분하다는데 동의한다면, 굳이 사설 볼링장의 영업을 시에서 방해할 의지가 없다면, 아시안게임이 마무리된 뒤 다시 농지로 환원하는 방안을 진작 마련하면 좋겠다. 쌀은 거의 자급하므로, 인천시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텃밭으로 개과천선토록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선학동의 농지는 더욱 아름다워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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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kdcks 2011-12-07 23:34:06
치룰 입장이 안되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경기장 많은 서울에서 하라고 개최권을 팔아 넘기면 될걸
뭘 머리 싸메고 한숨을 쉬는지......

심형진 2011-12-06 19:03:26
기존의 시설들을 이용해서 아시안게임을 정말 최소 비용으로 치루는 것이 인천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가 끝난 그 순간부터 애물단지로 전락할 경기장
개최권을 반납하는 것이 제일 좋은 안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박병상 박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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