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학교'로 학력 제고는 비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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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학교'로 학력 제고는 비정하다
  • 임병구
  • 승인 2011.12.07 15: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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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 임병구 / 인천교육연구소 소장


'지루한 천국과 즐거운 지옥'. 캐나다에 머물던 선배가 그 곳과 한국을 비교해 들려준 말이다. 한참 후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교사도 그 비슷한 표현을 썼다. 어두워지면 상점이 철시하고 술 한 잔 마시려면 주택가에서 한참을 벗어나야 하는 문화와 언제 어디서나 유흥이 가능한 우리 도시문화는 극과 극이다. 불야성에 가려진 휴식 없는 사회의 중증피로증후군을 알 때쯤 그 원어민은 떠났다. 말초적 즐거움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지옥 같은 일상은 '24시간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시간 편의점', '24시간 식당', '24시간 배달', '24시간 대형마트'…. 어떤 사회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동한다는 게 지속가능한 일인가 되돌아 볼 짬조차 호사일 뿐, 숨 가쁘게 노동하는 이들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는 그저 '간 때문'이다. '24시간 체제'는 '정상상황'이고 그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책임은 낙오자 개인의 몫이다.

그 '24시간 체제'가 인천의 고등학교를 엄습하려 한다. 차마 간판을 '24시간 학교'로 하지 못하니 기숙사학교라고 부른다. 애초 기숙사의 목적은 장거리 통학생을 위한 복지 대책이었다. 산업화 초기에는 농촌 인력을 공장에 끌어들여 숙련하는 과정에서 기숙사가 필요했다. 집단적 규율을 통해 개인을 누르고 사회에 필요한 품성을 훈련하는 기숙 교육이 특정 시대 상류층의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에 필요한 기숙사는 학력향상 대책이란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통학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자는 '시테크 전략'이거나 전교생을 수용할 수는 없으므로 소수 학생을 선별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이다. 

'시테크 전략'은 사람이 사용하는 시간에서 효율성을 뺀 나머지 영역을 무의미하다고 전제한다.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학생에게서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 말고는 의미와 가치를 지워간다. 휴식도 공부를 위해 짜놓은 일과 중 일부일 뿐이며, 음악을 듣는 일도 공부를 위해 배열한 시간표 안에서 이뤄진다. 학생이 인간인 이상, 다양한 욕구가 있고 청소년기라는 특성을 거치며 겪어낼 삶의 축적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공부의 성과를 본 후로 유예한다. "공부하다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는 말에서 풍기듯,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른 교육과 사육의 경계 지점을 넘어 과잉중노동 지경으로 학생들을 몰아넣을 터이다.

'차별화 전략'은 승자 독식 구조를 내면화하도록 만들어 사회에서 개인을 떼어낸다. 기숙사 학생과 비기숙 학생을 '구별짓기' 하면서 학생 사회를 계층화한다. 그 차별은 성적에 대한 맹신을 조장해 정당화한다. 성적순으로 자리 배치하기, 성적순으로 밥 먹기, 성적순으로 학교 시설 활용하기…. 학생들은 결국 성적순 기숙사 입소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학벌사회 폐해가 우리 사회를 삼킬 수준에 이르렀어도 그 폐해가 학벌의 정점에 올라선 계층에게는 특혜로 되므로 무감각해진다. 학생들은 기숙사를 통해 동등하게 누려야 할 사회적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되어도 상관없다고 여기게 된다. 오히려 특혜를 향한 경쟁에서 밀려난 자신을 탓하면서 그렇게 구조화한 사회로 진입한다. 

인천시교육청이 만들려는 기숙학교는 학력향상에 집착하는 한, '24시간 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 인천시교육청은 타 시·도 기숙학교 숫자와 인천을 비교해 수능 성적이 낮은 원인으로 제시한다. 해당 도시의 발전 과정과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의 오류다. 광주광역시만 해도 인근 지역 우수 학생이 대거 전입한다. 읍면 지역이나 도서 지역 우수 학생이 시내로 들어오게 되면서 기숙사가 필요해진 것이다. 학력을 높이기 위해 기숙사를 지은 게 아니라 학생들의 편의를 배려했다. 물론 학생들이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만들어 낸 부수 효과가 '24시간 학교' 쪽으로 기숙사를 유도할 수는 있겠지만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인천교육청은 굳이 기숙이 필요 없는 학생들을 더 채찍질해 거기서 승부를 보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학습의 성패는 학습자의 동기유발 여부에서 결정이 난다. 성적우수자가 입소 대상 우선 순위에 오를 텐데, 그 학생들에게는 양적 시간 관리보다 지속적인 동기 부여가 관건이다. 학생이 자기 속에서 내적 동기를 찾아내도록 돕는 방안이 먼저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선발 집단끼리 경쟁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될 때 어떤 학생은 도리어 위축될 수도 있다. 학생들의 심리를 살펴 적절하게 상담할 수 있는 인력과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우수 학생 중 일부 학생은 적응하고 그렇지 못한 부적응이나 소외 현상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학생들의 생활과 밀착해 기숙사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통제에만 능숙한 사감으로는 변화폭이 큰 요즘 학생들의 숨은 고민을 놓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수업보다 어려운 생활지도를 24시간 책임지는 일은 돈만 주고 뚝딱 건물 짓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숙사괴담'이 그냥 떠도는 게 아닌 이상, 시교육청은 교육적 숙고를 거듭할 책무가 있다.

우리 사회가 '24시간 체제'를 되돌아보려는 징표도 눈여겨봐야 한다. 주야 맞교대로 '24시간 공장'을 운영하는 완성차 공장들이 변하고 있다. 인간이 컨베이어벨트에 매달려 시중드는 노동에서 사람이 최소한 잠이라도 제 시간에 자 보자는 각성이 일고 있다. 생산효율성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받들던 노동현장이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쪽으로 미세하지만 이동하고 있다. 세계 최장 시간 노동, '돈 버는 기계인 아빠'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빠르게 공감을 얻고 있다. 외국 완성차 노동자들이 연간 1500~1600시간 일하는데 우리는 2400시간 일한다. 외국노동자들은 주간 2교대제로 일한다니 800시간 차이는 심야 노동 시간이다.

학생들은 항변한다. 어른들은 '8시간 노동'을 외치면서 학생들에게는 '16시간 학습'을 요구한다고. 우리 학생들에게 학습은 때론 노동보다 더 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오죽하면 학생이, 노동자가 그들의 존재 근거인 학습과 노동 문제로 목숨을 끊겠는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24시간 학교'는 시대착오적이다. 무한 노동 사회가 지속성장도, 최소한의 행복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반성이 이는데도 인천의 학교는 불야성을 자랑한다. 이웃 도시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심야학습을 줄이자고 목소리 높이는데 인천은 '24시간 학교'로 역주행하고 있다. 

사회의 성숙도는 인간미와 비례한다. '지루한 천국'은 사람의 맥박 수준으로 천천히 흘러갈 것이다. 가족도 돌아보고 사회도 인식하면서 그 안에서 개개인의 행복과 조화를 이루는, 느리지만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즐거운 지옥'에서 허덕거리며 하루하루를 때우듯이 살아낸다.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행복하리라 기대하지만 불안은 날로 커간다. 불안을 지우기 위해 불야성 속에서 밤을 보내고 쪽잠으로 몸을 달랜다. 하지만 24시간을 뺑뺑이 돌아도 그 중에서 내면의 천국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기숙사는 학생들에게 내면의 안식과 몸의 안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기숙사마저 친구보다 잠을 줄여 공부하도록 내모는 공간으로 삼겠다는 속셈이라면 차라리 짓지 않는 게 낫다. 어른들은 2교대라도 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교대해 줄 인생이 없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도 140억원을 들여 여섯 개 '24시간 학교'를 만들겠다니 그 비정이 우리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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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혜 2011-12-14 14:32:47
어느 교수님이 한 말이, 스티브 잡스는 영어를 공부하는 시간에 자기계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대단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음)
아시아계 국가 특히 한국은 영어공부를 위한 시간이 너무 많이 빼앗겨서 다른 것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 학생들을 학교에 묶어 두기 보다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접하게 하는 교육지원이 나온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강... 2011-12-07 22:37:00
맘이 너무 아파요 ...
오래 공부한다고 실력이 나아지는 게 아닌데 ...
그런 시스템속에 아름다운 우리 청소년들이 삭아가고, 우울증에 걸리고, 성적에 목슴걸게 되는 ..
다양한 가능성을 이제는 우리가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좋아하는 공부도 하기 어려운데 .. 싫어하는 공부 하기가 쉬울가요?
그거 해서 sky간다고 딱히 나아질 것도 없는 삶인데 ..

이 다양한 가능성, 다양한 에너지들을 이렇게 한 곳으로만 몰아가는 ..
부끄럽고 미안하고 ... 맘이 너무 아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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