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정치적 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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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정치적 중립
  • 김재용
  • 승인 2011.12.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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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재용 / 변호사


얼마 전 '공직자를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원칙과 요령'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지난 11월 22일 한나라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한 이래 20여일 가까이 민주당 등 야당을 비롯한 국민들이 서울 중심가에서 계속 FTA무효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다음날 인천지방법원 최은배 부장판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FTA 날치기 통과를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법관의 정치적 의견 표현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최 부장판사는 일간신문이나 인터넷 등 누구나 보고 읽을 수 있는 언론지상에 자신의 글을 올린 게 아니라, 자신과 소통하는 대화 공간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보수언론인 조선일보가 이를 두고 최 부장판사가 법관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기사를 썼고, 이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아마 조선일보 의도는 최 부장판사가 법원 내 진보·개혁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진보적인 법관들의 움직임을 위축시키려는 데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자 대법원은 즉각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열어 최 부장판사 글의 적절성과 법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한계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 후부터 최 부장판사를 지지하는 판사들의 의견 표명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12월 1일에는 인천지방법원 김하늘 부장판사가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테스크포스팀 설치를 대법원장에게 청원하려 한다면서 전국 판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글을 올렸다. 결국 김 부장판사는 12월 9일 100명이 넘는 판사들의 동의서를 첨부한 한미 FTA 재협상 전담팀 구성안 제안서를 대법원장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면 과연 최 부장판사가 한미 FTA 강행처리를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위반한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법관윤리강령에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조항이 규정되어 있다. 물론 헌법 제21조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정치적 자유권이라고 하면,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주된 내용으로는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하며,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헌법재판소 결정문)   

한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주된 내용은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특정 후보에 대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이며, 헌법에 따라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게 아니다.   
         
구체적으로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도, 공무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고,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되어 있고, 공무원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아니 금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공무원이 국민으로서 갖는 헌법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에서 최 부장판사 글을 문제 삼은 것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통과시키자 이에 불복하여 연일 계속 시위하는 야당을 비롯한 국민의 저항을 두려워한 여당과 보수언론이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법관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신속히 잠재우려는 의도였다고 보인다.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조항은 1960년 6월 헌법에서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규정되었다. 그 계기는 이승만 정부에서 실시된 1960년 3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무원이 대거 동원되어 부정선거를 저지른 데 있었다. 이 같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특히 공무수행 과정에서 지켜져야 한다. 그 취지는 국가권력이 정권을 잡은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이나 사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공직제도의 성질상 당연히 인정된다. 그러나 공무원의 공직수행과 관련이 없거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한 공무원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 자유 또한 당연히 인정된다. 물론 군대나 수사, 재판, 감찰 업무 등과 같이 공무원 중에서도 더 높은 정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예외적이다.

이번 최 부장판사의 경우를 보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자신의 재판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로 인해 향후 우리나라 사법주권이 미국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임을 볼 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판사의 글이라 할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나라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간 조약이다. 그런데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날치기 강행처리함으로써 국론이 분열되었고 야당 등 국민들은 절차상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그 와중에 최 부장판사가 날치기 강행처리를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를 두고 보수언론 조선일보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최 부장판사의 개인적·정치적 의견이며 헌법상 보장된 권리 행사이다.        

조선일보는 공무원인 판사를 비판함으로써 비판적인 여론의 확산을 막고자 했다. 그런데 그만 비판적인 여론은 더 퍼져나갔고 더 이상 막기 힘들어졌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모래알 같이 작고 흩어지던 국민 개인들이 이제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점점 커지고 모이고 있다. 이를 권력과 힘으로 장악하려고 하면 흩어져 버리고, 오히려 작은 일에도 공감하면 금방 모인다.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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