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죽음은 무엇을 남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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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은 무엇을 남기는가?
  • 윤세민
  • 승인 2011.1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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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세민 / 경인여대 교양학부 교수(언론학박사, 문화평론가)


부아지지와 하벨, 그리고 김정일의 죽음

사람의 죽음은 무엇을 남기는가? 그 생애에 따라 아주 조용히 잊혀지기도 하고, 크나큰 울림을 주며 역사에 아로새겨지기도 한다. 지난 주말(17-18일) 우리는 역사에 아로새겨질 죽음 몇몇을 접해야 했다.

‘재스민 혁명’ 끌어낸 튀니지 청년의 분신

아프리카 튀니지 청년 ‘부아지지’를 아는가? 부아지지는 튀니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숱한 청년 실업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리비아에 돈 벌러 건설노동자로 간 아버지는 그가 3세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재혼한 그의 삼촌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다. 졸지에 소년가장이 된 그는 12세 때부터 일을 해야 했고, 6명의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교도 그만둬야 했다. 군 입대를 자원했지만 실업률이 30%를 넘어서는 그의 고향 시디부지드에서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과일 노점상 수입은 고작 월 140달러 수준이었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과일을 나눠주기도 했던 심성 착한 노점상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노점 철거를 당하고 과일과 좌판을 몰수당했다. 부패한 경찰에게 뇌물을 상납할 형편이 안 됐던 부아지지는 시청에 찾아가 선처를 호소했지만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도록 해 주겠다"며 시청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붙였다. 꼭 한해 전인 2010년 12월 17일의 일이었다.

그의 분신은 만성적 실업과 독재에 시달려온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불과 28일 뒤인 1월 14일, 23년간 철권통치해온 벤 알리 대통령은 거센 민중의 분노에 쫓겨 망명했다. 재스민 꽃의 나라 튀니지의 기적은 무기력하게 독재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이웃 나라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주며 중동과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도미노 붕괴를 이끌었다. 그렇게 튀니지 청년 노점상 부아지지의 죽음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인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의 봄’을 꽃피웠던 것이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부아지지의 분신 1주기인 17일 시드부지드에 수천 명이 모여 부아지지의 죽음을 추모했다고 전했다. 도심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도 건립됐다. 최근 선출된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은 추모행사에 참석해 “튀니지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준 이 도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재스민 혁명’과 ‘아랍의 봄’은 많은 결실을 얻어냈지만,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헐벗고 쪼들리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한 청년의 희생으로 열린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오늘도 온 세계가 응원하고 있다.

'벨벳 혁명'으로 동유럽 민주화 이끈 하벨의 죽음

체코의 가난한 문학청년이었던 ‘하벨’을 아는가? 1936년 프라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48년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집안 배경 때문에 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야간학교를 나온 그는 극장에서 무대 담당자로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희곡을 집필해 촉망받는 극작가로 떠올랐으나 반체제적인 내용 때문에 당국에 의해 상연금지를 당하기 일쑤였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에 의해 무력 진압되자 울분을 못이기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 하벨은 1977년 자신과 뜻을 같이 하던 체코 지식인들과 인권 선언문 '77조 헌장'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그는 감옥에 수감됐지만 민주화 운동가로서 더욱 높은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89년 시민포럼을 조직해 대규모 비폭력 시위를 이끌면서 마침내 체코의 공산당 정권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체코의 민주화는 유혈 사태 없이 평화롭고 부드럽게 이뤄졌다고 하여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으로 불렸고, 이는 지금도 평화적 혁명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하벨은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나, 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독립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했다. 하지만 이듬해 분리된 체코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재선에도 성공해 2003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가 이끈 체코는 199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고, 높은 경제 성장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도입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지나치게 경제 성장에만 몰두했던 자신의 정책을 반성하기도 했던 하벨은 수단 다르푸르, 버마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막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자주 이름을 올렸다. 2007년에는 자전적 희곡 '리빙'을 발표하면서 20년 만에 극작가로서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던 그는 오래 전 폐암 수술을 받았고 순환기 관련 지병을 앓아오다가 결국 지난 18일 75세를 일기로 눈을 감고 말았다.

체코뿐만 아니라 동유럽이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데 원동력이 되었던 하벨의 죽음에 체코 국민은 물론 전세계적 애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하벨의 전투는 잊지 못할 것”이라며, “유럽의 큰 손실인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도 그의 죽음에 대해 “깊은 슬픔”이라며 “유럽인들은 하벨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애도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하벨의 벨벳 혁명은 체코 국민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고, 전 세계 민족자결권과 자존감을 얻으려는 세대에게 영감을 줬다"며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체코를 넘어 동유럽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벨벳 혁명'의 주인공 바츨라프 하벨, 그는 생전에 “진실과 사랑은 거짓과 증오를 이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북한의 절대 군주 김정일의 죽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9일 오후 세상의 모든 언론이 또 한 사람의 죽음을 속보로 전하고 있다. 지구상 마지막 공산국가로 불리는 북한의 절대 군주였던 김정일의 사망. 김정일의 죽음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역사적으로 공산체제는 절대 권력자가 죽은 뒤 급격히 변하였다. 스탈린이 죽은 뒤 흐루시초프에 의하여, 모택동이 죽은 뒤 등소평에 의하여 소련과 중국은 본질적 변화를 겪었다. 3대째 세습을 이어가려는 북한에서도 마침내 대변혁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동토의 땅 북한의 자유와 민주화를 이끄는 변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부아지지와 하벨, 그리고 김정일의 죽음…. 긍정이든 부정이든 역사에 아로새겨질 죽음이다. 오늘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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