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는 게 내겐 행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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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나누는 게 내겐 행복이죠"
  • 박영희 객원기자
  • 승인 2011.12.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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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 된 이웃] 인천연일학교 치과 할아버지의 '황혼일기'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황혼의 내리막길을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의료봉사를 통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채우며 살아가는 우광균(82, 연수구 연수동) 할아버지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희망을 주는, 숨은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2010 MBC사회봉사 대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귀감인 주인공이다.

 나이 일흔에 찾은 '또 다른 삶'

연수구 연수동에 위치한 연일학교는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등 1~3급 정신지체아를 유치과정부터 초등·중학과정과 고등과정, 그리고 전공과정 교육까지 가르치는 공립 특수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에는 1999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아이들 치아를 치료하고 관리해주는 '치과보건관리소장'이 있다. 아이들에게 '치과할아버지로' 통하는 우광균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나와 인천시 중구 신생동에서 40여 년간 운영해오던 '우치과'를 정리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수억원대 치과기자재를 연일학교에 기증하고, 재능기부와 더불어 나눔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의료봉사로 하루하루를 보낸 지 12년이 넘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치료할 때 대화라고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요. 치과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마구잡이로 힘으로만 저항하던 아이들과 땀으로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며 치료를 해주었어요. 녀석들이 얼마나 기운들이 센지 몰라요. 나보다 체격이 더 큰 녀석들도 많고…. 치료를 다 마치고 나면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온화한 미소를 띠며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는 우 소장 얼굴이 잔잔한 행복감에 젖는다.

능숙한 기술로 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정성을 다해 치료를 했지만,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치아치료에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소통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다양한 치과치료를 시술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월한 치료를 위해 정신지체아들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아동심리를 연구하는 등 아이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심리학공부를 병행하면서 치료를 했다. 그의 머릿속은 늘 아이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따뜻한 사랑을 품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눈높이를 맞추면서 가슴으로 아이들을 보듬다 보니. 그를 거부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치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성공이었다. 아이들에게 우 소장은 '우리 할아버지'로 됐다.

 봉사가 주는 기쁨과 행복

치과보건관리소가 문을 열 당시에는 심각한 충치와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54%였다. 하지만 우 소장의 집념과 노력으로 해마다 그 수가 점점 줄어 현재는 학생 대부분 건강한 치아를 갖게 되었다.

요즘은 치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두고 정기적으로 전교생들에게 불소도포를 해주며 치아관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제 이 학교 아이들에게 어렵고 힘들었던 양치질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다.

"치과 치료가 어려운 정신지체아들에게 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내가 가진 기능을 베풀며 살 생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사회에 신세를 지고 살기 마련이지요. 그것을 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일합니다. 그 보람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날 기쁘고 행복하게 하지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봉사를 하게 만듭니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새겨진 앞치마를 벗는다.

우 소장과 함께 12년째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신옥경 간호사(44, 연수구 옥련동)의 얘기다.

"소장님과는 우치과 때부터 함께 일을 했어요. 이곳에 와서 처음 3년 동안은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하면서 치료하느라 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힘들었지요. 그래서 소장님과 함께 아이들의 심리도 파악하고 공부하면서 개인별 진료카드에 성격과 특징 등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모든 자료를 상세하고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죠. 아이에 맞게 한 단계 한  단계 접근했어요. 지금은 치료가 수월하고 이제는 아이들도 이곳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출입해요. 소장님을 친정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모시면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돕고 있어요. 이제는 많이 연로(年老)하셔서 옆에서 지켜볼 때 안쓰럽고 걱정스러워요.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셨으면 하는 게 큰 바람입니다."

 무지개 빛으로 인생을 엮다.

그의 뜻을 이어받아 올 초부터 인천에 거주하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후배의사들이 매주 목요일 오전이면 우 소장을 대신해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강병훈 교장은 "우 소장님 봉사정신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저를 비롯해서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늘 건강이 염려스러웠는데, 마침 소장님과 뜻을 함께 이어갈 여덟 분의 의사선생님들께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를 해주셔서 무척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학교로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면 우 소장님을 비롯해 이 분들께서 이어가는 의료봉사가 저희 학교 첫 번째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백발이 성성한 우 소장은 진료가 끝나면 7년 전부터 시작한 그림 그리기에 열정을 쏟으며 젊은 미술가들 못지않게 화가로서 삶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아파트에 꾸며놓은 작은 화실과 옥련동 미술학원을 오가며 유화와 수채화 등 그림 매력에 푹 빠져 작품을 완성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

2년 전에는 80세를 맞아 학교 내 갤러리에서 '산수'(傘壽)전을 열면서 아이들에게 그림전시회를 통해 예술적 감성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도 했다.

남은 생을 필요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아름다운 황혼을 무지개 빛으로 채색하며 멋진 삶을 그려가고 있는 사람. 그의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며 살아가는 따뜻한 삶이 추운 겨울 시리고 메마른 가슴을 훈훈한 희망으로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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