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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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 최재성
  • 승인 2011.12.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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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최재성 / 인천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 인천시는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 사업을 민주적으로 추진하라!

송영길 시장은 작년 인천시장 선거운동 기간 내내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했고, 2010년 7월 1일 취임식 날 저녁에는 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시장과 함께하는 소통의 밤’ 행사를 열며 지역 현안들에 대해 시민들과 소통할 것을 약속했다. 당연하지만 신선했고, 또 이전 지방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다.
 
그러나 작금 인천시의 ‘수돗물 불소 농도조절 사업’ 진행을 보면 이 정부가 과연 민주정부인지, 시민과의 소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인천시는 지난 2011년 11월 2일 ‘2011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 사업 시민여론조사 연구용역 결과 보고회'를 갖고 논란을 빚던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이하 수돗물 불소화)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시민 1천명(비장애인 900명, 장애인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여론조사에 사업 추진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8.7%로 나왔고 반대와 보류 의견이 각각 28.6%, 12.7%로 집계되었으므로, 내년부터 남동정수장에 관련 시설을 설치하고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2014년부터는 전면적으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에 남동정수장 물을 먹는 남동구, 연수구, 남구, 부평구, 중구, 동구 등 6개 구 34개 동 주민 50여만명이 수돗물에 포함된 불소를 함께 먹게 되었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수돗물 불소화 사업 취지는 수돗물에 불소를 일정 농도(0.8ppm, 1l당 0.8mg)로 조절하여 충치를 예방하고, 충치로 인한 의료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충치에 취약한 극빈층이나 장애인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불소가 독극물에 속하는 위험한 물질이며, 수돗물 불소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그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반대논리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실 인천시에서 수돗물 불소화 논쟁은 세 번째이다. 지난 2002년과 2005년 수돗물 불소화 추진 시도가 있었으나 여러 차례 논란 끝에 사업 추진이 보류된 바 있다. 이번 인천시의 수돗물 불소화 사업 추진은 송영길 시장 공약에 포함된 사항이고, 치과의사인 전임 정무부시장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수돗물 불소화 논쟁 핵심은 사업의 안전성과 합리성, 그리고 추진과정의 민주주의 문제이다. 필자는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를 분명히 하는 입장이지만 추진 주체가 가지는 의도의 순수성을 믿으며, 찬성측 전문가들의 안전성에 관한 주장을 반박하고 싶지도 그럴만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문제는 추진과정이다. 

불소는 그 자체로 위험한 물질이며, 그렇기에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불소화를 찬성하는 치과의사들은 위험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전문가인 자신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반대론자들이 야속할 것이다. 위험이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그 충격의 정도와 발생 가능성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책적인 판단을 하면 된다. 그러나 위험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위험에 대한 판단은 객관적인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사회적인 가치와 문화적인 배경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비자발적인 위험,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위험,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는 위험을 더 크게 느낀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 있는 상황, 나는 필요 없는데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 있는 상황, 불소로 인해 원하지 않는 치명적 상황이 발생할 위험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무식한 소리 하지 마라.’, ‘전문가를 믿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더 무식한 소리라는 것을 인천시와 불소화 찬성론자들은 알아야 한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천시는 지난 6월 시민의 의견을 따르겠다며 공정한 여론조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8월 29일부터 10월 24일까지 인천시 용역을 받아 여론조사를 한 부산대 산학협력단의 여론조사 책임자는 보건복지부 산하 구강보건지원사업단의 수돗물 불소농도조정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다. 그는 지난 2005년 11월 11일 인천시의회 문교사회위원회에서 주최한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에 관한 인천시민 토론회’에서 불소화 찬성측 발제를 한 사람이며, 수돗물 불소화 전도사로 전국적 명성을 갖고 있다. 그가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파리가 새라는 말도 믿을 것이다. 상식을 가진 인천시민들이 인천시 여론조사 결과를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필자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인천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는 올해 초부터 시민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대해 수돗물 소비자인 인천시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 관련 토론회’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1년 내내 수돗물 불소화 찬성측 발제자와 토론자를 구하지 못해 토론회가 연기되었다. 사업의 추진 주체인 인천시도 토론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토론회는 연말이 되어서야 반대측 인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시민들에게 수돗물 불소화 사업 취지를 알려야 할 찬성측과 인천시가 공개된 토론회를 회피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소한 반대가 있더라도 옳은 일은 추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결국 사업이 시행되면 반대하던 사람들도 그 효과를 인정할 것이라는 생각일까? 일본의 대지진을 보고도 원자력발전 정책을 고집하고,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야만 누구 얼굴이 떠올라 민망하다.

인천시와 수돗물 불소화 찬성측 인사들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 추진 과정에 손상된 신뢰는 인천시 추진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여론 분열의 책임은 당연히 소통을 거부한 인천시에 있다.

잘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아직 조용한 편 아니냐고, 앞으로도 조용하지 않겠냐고 할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가 장담하건데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 시범사업이 실시되면 더욱 조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문제를 가지고 나라 망할 것처럼 떠들었던 비상식적인 사람들에게 국민들은 상식적인 결과를 안겨 주었다. 나라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그 사람들은 망했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리수를 두며 ‘복지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자신의 선택이 시장직 사퇴로, 안철수 현상으로, 박원순 시장 당선으로, 한나라당 위기로 이어질지는 몰랐을 것이다. 송영길 시장은 불신임 얘기가 나와야 소통을 시작할 것인가?

인천시의 수돗물은 208만명이 먹는 물인 까닭에 불소화를 원치 않거나, 2세 이하 영아나 노인 등 불소에 특히 취약한 특정 계층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한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구강보건에 불소화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인천시가 이제라도 수돗물 불소화를 포기하기 바란다.

그러나 굳이 추진하려거든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분명한 원칙이다. 그러나 다수결 이전에 충분한 토론이 먼저다.

인천시는 불소화 추진측과 반대측 논리가 시민들에게 공정하게 전달될 수 있는 토론회, 공청회를 개최하라. 그리고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정보가 전달될 수 있도록 방송 중계를 보장하라.

충분한 토론과 협의 후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문항으로 중립적인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하여 시민의 의견을 물어라. 아예 주민투표를 시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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