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폭행녀'를 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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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폭행녀'를 보는 시선
  • 양진채
  • 승인 2012.01.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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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처음 이 기사가 인터넷에 떴을 때 적잖이 놀랐다. 어떤 여인이 박원순 서울 시장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목덜미를 후려쳤다는 기사였다. 서울시장과 빨갱이라는 도저히 조합이 불가능한 두 단어가 만들어 내는 묘한 이질감이 신선하기까지 했다. 다른 어떤 단어도 아닌 ‘빨갱이’라는 사어(死語)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단번에 ‘박원순 폭행녀’로 검색어에 올랐다.  알고 보니 정동영 의원을 폭행한 전적까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 김근태 고문의 빈소에서도 난동을 부렸고, 팝페라 가수의 공연장에서 소란을 피워 연행되었다는 기사가 떴을 때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지켜야 하는 빈소와 공연장에서까지 난동을 부리는 그 여인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 때문이다. 환갑을 넘긴 여인이었다. 모두 ‘빨갱이’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당당하고 격하게 말했다. 근거도 없었고, 동기도 빈약했다. 이데올로기의 망령에 휘둘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저 여인을 저렇게 만들었는지, 이 사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여인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 여인이 저리 된 데는 어쩌면 우리의 아픈 역사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25전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독재정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개혁을 외치는 사람을 모두 빨갱이로 몰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 때면 북측의 ‘삐라’를 가장해 야권의 인사를 대대적으로 빨갱이로 몰기도 했다. 김근태 고문도 그 역사적 피해자였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다 똥물을 뒤집어 써야 했던 동일방직 노동자를 위시한 수많은 노동자들, 고엽제 피해로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 월남파병 군인들, 광주민주화항쟁 한 가운데 있었던 시민들, 청춘을 불사르며 민주화를 외쳤던 많은 학생들.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 또 그 반대편에서 대립의 각을 세웠던 사람들, 사람들.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소용돌이 역사의 피해자는 아닐까. 

너무 멀리 간 것인지 모르겠다. ‘박원순 폭행녀’는 편협한 고집불통의 극우파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제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제라도 사회 역사적 피해자의 아픔을 같이 보듬고 치유해나가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돈봉투를 비롯해 온갖 비리와 암투가 난무하는 정치권을 보고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를 모르는 애숭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날렵한 ‘꾼’보다는 ‘애숭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글을 마무리 하는데 난데없이 뒷목이 뻐근한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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