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불신의 벽을 높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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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불신의 벽을 높이는가
  • 김재용
  • 승인 2012.02.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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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재용 / 변호사


지난 2월 10일 대법원은 임관 후 10년마다 진행하는 법관 재임용심사를 통과한 법관 113명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동안 재임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서울북부지방법원 서기호 판사(42, 연수원 29기)는 결국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지난 7일 법관인사위원회로부터 재임용 부적격 통보를 받고 자신의 근무평정에 대해 100여장에 걸친 소명자료를 제출했음에도 이에 대한 답변은 한 줄도 없었다고 한다. 근무평정은 상급자만의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전혀 할 수 없다.  평정 결과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이의제기를 할 장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는 법관인사위원회 구성과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근무평정의 공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번에 탈락한 서기호 판사는 SNS에 '가카의 빅엿' 등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올려 논란응 빚었는데, 서 판사는 지난 2009년 촛불시위재판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던 신영철 대법관이 담당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한 것을 두고 신영철 징계를 주장하기도 해, 그 동안 근무평정에서 밉보인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서 판사는 지난 10년 동안 평점에서 '하'를 5차례나 받았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반면에 서울지방변호사회 법관평가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최하위권에 든 일이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눈에 거스르는 자는 배제한 게 아닌가 한다.

한편, 지난 1월 18일 설 명절 전에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예상을 뒤엎고 연일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지금부터 5년 전인 지난 2007년 1월 15일. 전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가 당시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와 재판 결과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들고 있던 석궁을 쏴 상해를 입힌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명호 교수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고 2008년 6월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이 확정되어 2011년 초 감옥에서 출소하였다.  그런데 재판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와 박홍우 판사 사이에 진술이 서로 달랐고, 특히 김 교수는 우발적으로 석궁이 발사된 것이며 피해자인 박 판사가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김 교수의 고의적인 행위로 판단하고 전치 3주의 상해로서는 이례적인 중형에 해당하는 징역 4년을 선고하였다.  한 마디로 '감히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징역 4년에 처한다'였다고 할 것이다.  하긴 고등법원 부장판사하면 대법관 다음의 최상층 법관이니 김 교수가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이 <부러진 화살>을 보고 박수를 치고 시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총제작비가 15억원 밖에 들지 않았고 요즘 젊은 스타 한 명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가고 있다. 물론 국민배우 안성기의 열연이 눈에 띄지만.  이제 개봉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손익분기점(50만명)을 넘어 100만명 동원을 하였고 제2의 <도가니>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급기야 대법원에서 자청하여 영화와 사실(재판)은 서로 다르다면서 사법부를 겨냥한 이번 <부러진 화살>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서는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동안 높은 법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데 익숙해 온 사법부가 국민들의 시선에 당황하여 허둥대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었다. 그러자 대한변호사협회도 전국 변호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집단으로 <부러진 화살>을 관람하면 영화비를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좋은 일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항변하는 김 교수 주장이 사실과 다르고, 오히려 4년 전 김 교수를 유죄로 보고 징역형에 처한 재판부의 판단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는 것은 김교수의 유무죄 여부가 아니라 사법부의 불공정한 재판에 대한 공감이다. 박수를 받는 대상이 사법부가 아니라 사법부를 질타하는 피고인이라는 전도된 현상인 것이다.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고 하겠다.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피해자인 형사사건에서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죄를 물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해도 너무 했다. 가재는 게편이다.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 결국 이 같은 말이 나오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사법부 자신인 것이다.     
 
 2011년 말 모처럼 대법원 선고 공판정에 참석한 적이 있다. 오후 2시, 대법관 3명이 차례로 들어와 앉았고 이어 차례로 자신이 배당받은 사건들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 나갔다. 내가 선임한 사건 중 1심부터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2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형사사건을 상고하였는데, 그 날 상고심 선고가 있어 참석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법관 3명 중 왼쪽에 앉아 있는 대법관이 유독 내 눈에 들어왔다. 신영철 대법관이었다. 순간 내 눈 앞에는 대법관이 3명이 아니라 2명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사건의 선고를 기다리는 내내 '사법부 불신'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재판절차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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