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三抛)세대와 결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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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三抛)세대와 결혼문화
  • 김자영
  • 승인 2012.02.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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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김자영 / 인천시 여성문화회관 관장


특정세대를 일컫는 말은 4.19세대, 386세대처럼 보통 자신들의 역사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며 떳떳하게 명명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시대 젊은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88만원 세대'에 이어 '삼포(三抛)세대'가 등장했다. '삼포세대'는 경제여건상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한다. 학자금 대출로 빚을 떠안고 시작하는 청춘. 그 빚을 갚기도 벅차고 목돈이 필요한 결혼은 부담스럽기만한 청춘. 새로운 계획으로 희망이 가득해야 하는 청춘이 포기와 패배를 자인하는 암담한 현실이 반영된 우울한 신조어이다. 포기했다는 것은 싫다는 게 아니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니, 늦어지는 결혼도 늦어지는 출산도 그들의 이기적인 선택은 아니다. 자긍심을 담은 멋진 이름으로 자신들의 세대를 명명하지 못한 청춘에게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하는 것일까. 
 
등록금 마련을 위해 이리저리 뛰느라 연애는 뒷전이고, 졸업 후엔 바늘귀 같은 취업 문을 통과하기가 태산을 넘는 일보다 힘들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밀린 대출금을 갚다 보면 목돈 만들기가 쉽지 않아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까닭에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했던 결혼이 미루어지고…. 그러다 보면 그냥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30대를 훌쩍 넘기게 되는 게 이 시대 젊은이의 현실이다. 
 
또 계속 심화하는 고용 불안, 주택가격 불안, 물가 불안 등 여러 가지 위협 요소가 엉키면서 '삼포세대'의 포기는 단지 젊은이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계층이동을 꿈꿀 수 없는 현실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목표를 정하고 전진하기보다 좌절감으로 허기져 있는 젊음이 안쓰럽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생활체감정책단 1천 명을 대상으로 '관혼상제 중 가장 개선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 묻자 전체 응답자 56.1%가 혼례라고 답했고, '혼수 부담이 결혼기피에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약 80%가 '그렇다'고 대답해 젊은층의 결혼기피 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식으로 변화가 필요하냐는 구체적 질문에는 '여자 예단준비, 남자 집 장만'이라는 혼수 공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7.7%로 가장 높았고 '예식장 중심의 결혼 문화'가 27.4%로 그 뒤를 이었다. 한편 여성가족부가 남녀 평균 결혼비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남자는 약 8000만 원, 여자는 약 3000만 원의 결혼비용이 든다고 한다. 국내 전체 혼례산업은 주택마련 비용 40조원을 포함해 약 55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니, 이런 결혼 시장에서 낙심하고 사랑조차 자유롭지 못한 청춘을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문화 개선이 '삼포(三抛)세대'를 다시 '삼득(三得)세대'로 변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결혼이 아닌 결혼식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결혼의 의미보다 결혼식이 더 중요하게 자리잡은 작금의 현상을 벗어나 남의 이목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결혼 당사자 간 약속의 의미가 중요한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또 부모가 베푸는 잔치가 아닌 신랑 신부가 주인공으로 되어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살아가는 시작의 의미를 새기는 결혼을 보고 싶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두려움이 없었던 부모 세대의 무모하리 만큼 용감했던 패기를 다시 누리기엔 어려운 여건들이 산재하지만 때론 두 사람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사랑을 선포하는 멋진 객기를 부려보면 어떨까. 소중한 언약의 시간인 결혼식에 많은 하객이 신랑 신부의 얼굴도 못본 채 식당으로 향하는 것보다 그 언약을 지켜보며 기쁜 축제를 함께 치를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결혼식을 요란한 예식장을 피해 가져보면 어떨까. 

'스드메'는 스튜디오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묶어 부르는 말이란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의 스트레스는 '스드메'부터 출발한다. 결혼이라는 개인사의 기록을 소중히 남기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상업성이 개입되어 그 의미는 멀어지고 예식비용으로만 남는 많은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예단준비, 집 장만이란 혼수공식의 변화가 필요하면 바꾸어 보자. 결혼준비 중 예단문제로 헤어지는 커플이 심심치 않게 있다 하니 이 정도면 주객전도가 가관이다. 젊음의 감수성으로 결혼의 형식과 의미를 재해석하고 두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축제를 만들어보자.

쿤츠는 <진화하는 결혼>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혼은 지속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미래에는 개인주의가 더욱 더 팽배해 질 것이고 그럴수록 정서적 교감을 나눌 대상을 더 열렬히 원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 정서를 교감할 가족을 갖는 일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중요할진대 어렵다고 피하기보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또 그러한 문화를 찾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 영위와 발전의 문제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결혼하고 싶은 사회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청년일자리 제공, 신혼부부 주택지원 확대, 결혼비용 절감의 사회적 인식개선 등의 방법을 강구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동행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큰 박수로 응원하자.


방송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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