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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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눈
  • 김정희
  • 승인 2012.02.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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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킬럼] 김정희 / 시인


경주 최부잣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라비 바트라 경제학 교수는 일찍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언을 전망한 바 있다. 그 후 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극심한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와 금융권에 대한 불만이 월가 점령 시위로 표출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자본주의 종언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선진국 부자들은 자진해서 자본주의 체제 안정을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내겠노라고 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 불황 장기화로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중산층마저 몰락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 재벌들은 선진국 부호들과는 딴판으로 부 축적에 더 한층 열을 올린다. 재벌의 자제들이 빵·순대·비빔밥·덮밥·떡볶이·물티슈·커피숍까지 가로채며 소상공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적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경주 최씨 가문은 흉년에 헐값으로 나온 빈농의 땅을 사들이지 않아 존경받았다’는 말을 꺼냈다. 재벌들에게 지네발 식 사업 확장 자제를 요청하면서 최 부자 이야기를 빌려 기업윤리를 들먹인 것이다. 정권 인수위 때부터 친재벌 정책을 펴며 재벌들의 골목 상권 침투를 방조했던 장본인이 이제 와서 동반성장을 외면하는 재벌들을 점잖게 나무라는 모습이 여간 우스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성장 격동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던 국가의 특혜, 국민들의 성원과 희생을 망각하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 상도덕을 도외시한 결과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삼성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며 국내외에서 화려한 명성을 쌓았지만 부도덕한 기업으로 지탄받고 있다. 

이런 때에 매년 수익성만을 목표로 부도덕한 경영을 해온 기업과 기업인들을 분야 별로 선정해 만천하에 공개하는 행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스위스 NGO 베른선언이 주관하는 ‘공공의 눈’ 시상식(the Public Eye Awards)이 바로 그것이다. 
  
삼성은 브라질의 광산·건설업체 발레,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주범인 도쿄전력에 이어 ‘최악의 기업’ 3위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주최 측은 삼성을 소개하는 글에 ‘노동자의 등골 위에서 만든 첨단기술 전자제품’이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금지된 극독성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아 140여 명이 암에 걸렸고, 50명 이상의 젊은 노동자가 죽었음을 밝혔다. 그에 덧붙여 노동조합 탄압, 부패와 세금 탈루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 결과에 대해 삼성은 주최 측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는데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삼성반도체,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에서 꽃다운 나이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5년 전 태안반도 원유 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보상을 하지 않아 피해 주민들 중 네 명이 자살했고, 삼성 본관 앞에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남편 때문에 시위하는 한 아내가 있다.  

삼성은 이런 중차대한 사건들에 대해 사죄와 적절한 피해 보상은커녕 사실을 은폐·왜곡하면서 유가족들을 협박·회유·감시하는 데만 골몰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노동자의 복지를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고 세계적 수준의 환경, 안전, 건강시설을 유지하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는가.

최근에 숙명여대 유진수 교수가 펴낸 책『가난한 집 맏아들』이 주목받고 있다. 여기서 ‘가난한 집 맏아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1% 대한민국 부자들을 일컫는다. 저자는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으면서 성공한 기업은, 그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빚을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못 박았다. 

이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재벌들이 족벌 경영 체제를 청산하고 상생정신에 입각하여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한다면, 국민들은 반기업 정서를 접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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