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아이와 어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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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없는 감옥-아이와 어른을 위한 변명
  • 유해숙
  • 승인 2012.05.07 17: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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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사회복지학과


"우리 엄마는 만날 공부만 하라고 그래요. 공부밖에 몰라요. 정말 짜증나요."
"우리 아빠는 나한테는 관심이 없고 성적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아빠만 보면 열받아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 교육에 참여한 아이들의 말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부모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어느 시대이든지 부모에 대한 불만은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불만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모 욕을 하는가 하면, 부모를 때려주고 싶다는 아이, 심지어 초등학생 입에서 죽이고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전에 고등학생이 학습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엄마를 살해하고 8개월간 방치한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경향의 아이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다수의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불만을 토론했다. 특히 불만은 부모의 관심이 공부뿐이고, 자신들을 학원으로 끌고 다니며 공부만 시킨다는 데서 기인했다.

충격이었다. 서울의 사립학교와 부천지역의 공립학교에 재임하는 교장선생님들과 대화하면서 이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원망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왜 이럴까. 혹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보니 아이들의 정신상태가 해이해졌다고 분석한다. 즉, 문제의 원인은 아이들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현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끔찍하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6명은 하루(평일)에 12시간 이상을 공부하고 있다. 소수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해 학교, 학부모, 아이들이 모두 총동원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인권은 없다. 오죽했으면,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선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인권은 학교 밖에서 지켜질까. 부모들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 즉 '놀토'는 집중적으로 학원을 가는 보충학습의 시간으로 되고 있다. 이처럼 대학에 갈 때까지 아이들은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보니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경쟁의 사지로 내몬 결과 발생한 일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책임이든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 초등학생 중 11.7%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가출 충동을 느꼈다고 응답한 학생도 15.8%나 됐다. OECD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2009년 한국 자살률은 1만4513명으로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가장 높은 비율로, OECD 평균 13.0의 2배 이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순위가 자살이고 자살한 사람들 중 절반이 성적과 연관되어 있다. 한편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어린이ㆍ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평균 100점)는 69.29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3년째 1위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초등학생은 OECD 국가 중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다. 이런 현상은 국제중과 일제고사 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본격적 입시가 시작되고 나서 더욱 심화되었다. 아이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부모를 살해한 고등학생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만 생각할 수가 없다. 즉, 부모에게 증오의 감정을 가진 아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나 교사들이 나쁜가.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대화하는 하루 평균 시간이 30분 미만이다. 어른들은 대화보다 공부를 원한다. 이렇게 보면 부모와 교사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교는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말이다. 적자생존, 양육강식, 승자독식의 사회를 뼈저리게 경험해 왔고, 하고 있는 이들은 무엇이 자신의 아이에게 이로운지를 알고 있다. 이들은 좋은 부모, 교사, 어른이 되기 위해 경쟁력이 곧 생존이라는 철의 법칙과 경쟁력을 위한 준비를 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아이와 어른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 구조 속에 갇혀 있는 아이와 어른들을 보아야 한다. 즉,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상품화해서 스스로를 개인과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 사회적 위험을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보장이 부실한 상태에서 시민들은 교육과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하여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아이들을 반드시 대학에 보내야 한다. 이것이 아이의 가계와 노후를 책임지는 가장 확실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신자유주의라는 철학과 이것을 지지하는 세력,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정책의 공모관계에 의해 더욱 공고해져 왔다. 아이와 어른은 이 '창살 없는 감옥', 즉 끊임없이 상품으로만 평가받는 '쇼핑몰' 속에 갇혀 서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문제틀을 제대로 보고 바꾸어야 한다. 구조의 변화 없이 개인과 가족 책임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어떤 변화도 아이와 어른이 자학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학하거나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자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아이들과 다른 틀을 상상하는 교육과 소통을 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감사와 평화로 넘치는 달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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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표 2012-05-08 10:04:07
공감이 감니다 아이들이 어떤때는 잠자는 모습을 볼때마다 안스러워요
마음껏 뛰여놀고 저렇게 고단하게 잠을 자야 하는데 자기생각대로 못하고
주위 때문에 아남 해야하기 때문에 피곤해 잠든 모습은 태여남 자체가 불쌍할때도
가끔 충동적으로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국민은 나라의
교육 정책이 더 창조적인 면으로 갔으면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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