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酒仙)이 되어 날아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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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酒仙)이 되어 날아간 시인
  • 최일화
  • 승인 2012.05.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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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최일화 / 시인


이효윤 시인은 가난과 고독을 앓으며 살다가 15년 전 4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인은 나와 동갑나기로 인천문인협회 회원으로 만나 10여 년 동안 격의없이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 측은한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이 시인은 서구 경서동에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시인이 살던 연립주택은 위치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인 생존 시 그곳은 인천이면서도 농촌의 풍경과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던 도시 속 시골이었다.

이 시인은 그곳에서 주물공장 일도 하고 피아노 의자를 주문 받아 아내와 함께 열심히 작업하기도 했다. 이것저것 여의치 않자 시인은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재료를 구해다가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지었다. 신선초를 키워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 시인과 함께 김포 들녘 농장을 방문해 신선초 모종 값을 알아보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 모종은 사지 못하고 씨를 구해 파종한 결과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싹이 난 비닐하우스 두 동은 황량하기만 했다. 결국 신선초를 포기하고 거기에 열무씨를 뿌렸다. 열무 열 단 값이 얼마나 하겠는가. 나는 그 걸 몇 단 사가지고 값을 치르기도 했다. 가난은 가난을 부르는가. 그 후에도 시인은 아들과 함께 호박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두엄 더미에서 리어카로 열심히 두엄을 날라 구덩이를 메우곤 했다. 그곳에 호박을 심으면 가을철 한 개에 당시 5,000원 하던 늙은 호박을 한 백 개쯤 수확할 것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해 가을 이 시인을 찾아 다시 경서동으로 갔을 때 그는 비닐하우스도 호박구덩이도 다 버리고 반 지하 어두침침한 방에 앉아 온종일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마루 벽을 빙 두른 서가엔 유독 동양의 고전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인근 슈퍼마켓 주인은 하루에 매일같이 소주 3병씩을 사간다고 했다. 이미 아내도 아들딸도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것 같았다.

그 후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갔을 때는 알콜성 황달로 얼굴이 완전히 노란빛으로 의식도 없이 누워 있었다. 이렇게 시인은 서서히 삶을 마감하고 있었다. 김영랑의 고향 강진에서 태어나 인천의 변두리 처가마을에 와서 가난하게 살던 시인은 결국 1997년 5월 9일 시집 한 권을 세상에 남기고 4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이 시인인가. 왜 생명까지 축내며 그렇게 술을 마셨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름대로 고뇌가 있어서 시를 쓰고 술을 마셨겠지만,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술에 탐닉해야 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 시인은 1994년 제 6회 인천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서구청에서 운영하는 한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종종 들르던 그의 유택에 들른 지도 몇 해가 되었다.

시인의 사후 집을 한 번 방문했을 때 딸 진선이는 결혼을 했다고 했고 아들 준현이는 고등학생이었다. 지금은 30을 훌쩍 넘었을 자녀들이 때맞춰 아버지 산소 잡초라도 뽑고 있는지. 시인의 유작도 있을 텐데…. 가족들을 만날 수가 없다. 시인의 시를 하나 소개한다.

물물교환 

                                                         이효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젊은 사내의 주검을 공동묘지에 묻고
며칠 밤을 이웃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살길 찾아 동네를 떠났다
그해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가고
하필이면 청승맞게 눈발 내리던 날
생선 머리에 가득 이고 어린애를 없은 채
그녀가 마을에 나타났다
언제까지 이어지려는가
가난한 사람들의 인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 너는 또 어떻게 지냈느냐
아내도 그녀도 더 이상은 묻지 않는다
쌀과 생선을 물물교환하고
킹킹거리는 어린애를 달래며 방문을 나서던
그녀를 생각하면 아내도 잠이 안 오는지
천정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배고픈 자 더 배고프게 하고 배부른 자 더 배부르게
하는 세상에서는 젊어 고생은 늙어서까지 고생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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