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가 내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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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바'가 내미는 세상
  • 양진채
  • 승인 2012.05.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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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지난 어버이 날 즈음이었다. 어떤 연세 드신 분이 어버이가 왜 어버이인줄 아냐고 물었다. 엉뚱한 농담도 곧잘 하시는 분이었는데 어버이가 ‘어부바’에서 왔다는 거였다. 어버이 어부바 느낌도 비슷하잖아요, 라고 말하는데 그럴 듯하게 들렸다. 국어학적 어원을 떠나서 뭔가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어린 자식들을 업어 키운 분, 나이 들어 거동이 어려울 때 업어드려야 할 분이 바로 어버이가 아닌가!

아기에게 넓은 등을 내밀어 ‘어부바’ 할 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기는 조금 전 울었던 기억도, 뭔가 못 마땅해 떼를 썼던 기억도 잊은 채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등에 업혀 포대기에 싸인 채 금방 잠이 든다. 그렇게 아기는 큰다. 학교에 들어가고, 청년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그리고 어버이가 된다. 아기의 어버이는 나이 들어 노쇠해진다. 거동이 불편한 나이든 어버이를 아기였던 어버이가 업어 방에서 거실로, 차로, 병원으로 간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어부바’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길을 가다 보면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엄마를 보는 일이 흔치 않다. 포대기로 아이를 업는 대신 흔들침대에 뉘어놓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아기띠를 이용해 앞으로 안는다. 할머니가 업어주려 해도 젊은 엄마는 아기 다리가 휠까봐 못 업게 한다. 잠결에 젖을 달라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대신 시간 맞춰 우유병의 실리콘 젖꼭지를 물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전에 아이를 업어주는 일은 아이와 부모 간의 교감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할 일은 많고 아이는 보채고 할 때 얼른 아이를 업어 달래면서 다른 볼 일을 보았던 경우가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때 그렇게 엄마의 등에 업혔던 아이는 엄마의 등 너머로 세상을 보았고, 등이 주는 안온함에 잠이 들었다. 지금은 육아의 편리함과 아이의 외모를 위해 포대기로 아이를 업는 대신 다른 대용품이 그 몫을 한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부모의 체온을 느끼며 잠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날로 흉포해지거나 부모 자식 간에 불화가 많은 이유가 이 ‘어부바’를 자주 하지 않은 데에도 있지 않을까.

어부바는 단순히 ‘누군가를 업는다’거나 ‘업어달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체온을 느끼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다독거려 주는 행위였다. 어린 내가 어머니의 등 뒤로 걸어가 어부바, 어부바 조를 때마다 등을 내밀어주었던 어버이. 늙은 어버이는 자식에게 등을 내밀라 원하지 않는다. 어버이의 ‘어부바’를 말 못하는 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은 젊은 어버이의 몫이자 진정한 ‘어버이’가 되는 길이 아닐까.

오늘, 누군가에게 등을 내밀어 오랫동안 입속에서 소리내어 본 적이 없는 어부바를 해보자. 부드럽고 따뜻한 그 소리가 잊었던 옛 일을 떠올리게 하고 웃음을 찾아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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