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심체요절' - 인류 100대 사건 중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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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 인류 100대 사건 중 1위
  • 이창희
  • 승인 2012.05.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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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세계 최초의 발명품 금속활자 '직지'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해왔다. 직지 간행 장소가 청주 흥덕사였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은 1985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흥덕구 직지대로 713번지)에서 흥덕사 터를 발굴했고, 학계의 인정을 받으며 1992년 세워진 것이 청주 고인쇄박물관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간추려 보아도 '직지심체요절'이라 꽤 긴데, 줄여서 '직지'라고 부른다. 이 책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이라는 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책은 본래 상하 두 권이었는데, 현재는 하권만 남아 있고 그것도 첫 장은 없어진 상태이다.

'직지'는 1377년에 인쇄되었으니,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앞서서,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선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가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책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 책이 한국의 것이며,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것을 밝힌 분은 박병선 박사이다.

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이 책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 혼자 노력으로 이 책이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한 과정에 활자를 만들다 불을 내기도 하는 등 박병선 박사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이 분은 우리나라의 문화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흥덕사(직지제조터)

일반인들에게 "이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항상 나오는 대답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고, 프랑스 군대가 훔쳐 간 것이다"라고 답변한다. 그러나 둘 다 답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직지'는 책이니만큼 박물관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어야 하고, 뺏어간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간 것이기 때문이다.

뺏아간 것은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를 침범해 그곳 외규장각(왕실기록 보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의궤였다. '직지'는 한말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플랑시라는 사람이 정식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몇 단계를 거쳐 나중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우리의 '직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일한 예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직지'는 우리나라 책이지만 우리나라에 있지 않았음에도 세계유산으로 인정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이 '직지'를 유네스코에 등재신청했을 때, 이 책이 한국에 있지 않아 불합격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당국은 이 책은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책이기 때문에 소재지가 어딘가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속활자 발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꽤 알려진 것 같은데, 이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별로 알려진 것 같지 않다. 우리 조상이 금속활자를 인류 역사 최초로 발명했다는 것은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우리가 항상 문화를 수입하기만 하던 중국을 제치고 금속활자를 먼저 발명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이것은 고려가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금속활자 발명이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이야기로 알 수 있다. 1999년 경에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지난 1천 년 동안 있었던 사건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대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때 1위를 한 사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놀랍게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고 한다. 종교혁명이니 산업혁명이니 하는 그야말로 굵직한 사건들을 다 젖히고 금속활자 발명이 이렇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된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양피지로 만든 히브리어 성경. 부피도 크고, 만들기도 어려운 이런 양피지 특성 때문에 지식은 수도원이나 권력이 있는 군주에게만 독점되었다.

우리는 금속활자와 인쇄문화 발전이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활자란 책을 찍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책이란 게 무엇일까? 책은 인류 문화발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까지 책은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고 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책을 만들 때 양피지를 썼는데, 책 한 권 만드는 데에 엄청난 양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책은 군주들 혹은 수도원에서나 소유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이처럼 책이 별로 없어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금속활자 발명으로 책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자 인류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왜 그랬을까? 책은 인류가 지닌 지식이나 지혜를 순식간에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책은 인쇄되자마자 도처로 전달될 수 있으니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나오면 금방 전 인류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책은 다음 세대로 전달되니 그 지식이 계속 축적될 수 있다.

이렇게 지식이 전 지구적으로 순환되고 축적되니 금속활자가 발명된 이후로 인류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가령 유럽사에서 매우 큰 사건이었던 종교혁명도 그렇다. 루터의 생각이 그렇게 빨리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금속활자로 인쇄한 문건 덕이었다. 산업혁명이나 과학혁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래서 카알라일은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렇듯 금속활자 발명이란 인류사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활자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고어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류가 지금껏 사용해왔던 인쇄술은 고려의 것이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기술이다.

우리나라나 중국은 금속활자 기술을 그다지 발전시키지 않았다. 구텐베르크는 초판부터 180부의 기독교 성서를 찍었지만, 우리 기술로는 10부 정도밖에 못 찍었다고 한다. 우리가 금속활자 기술을 더 발달시키지 않았던 것은 목판술이 발달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목판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인쇄하기는 아주 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중국은 금속활자를 크게 발전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라는 자부심을 느껴야 하나 세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사정이 어찌 됐든 세계 최초라는 게 어디인가? 그것도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금속활자의 최초 발명국이라는 게 말이다. 이런 건 아무 나라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당시 고려의 문화력∙경제력∙정치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당시 고려는 한 마디로 최고의 선진국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조상의 높은 문화가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있다면 프랑스는 위 '직지심체요절'을 하루빨리 대한민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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