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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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 박병상
  • 승인 2012.05.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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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여름으로 이어지는 5월 하순이면 자연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약동한다. 이른 봄에 부화해 오물거리던 애벌레들은 어느새 컸고, 새로 꾸민 둥지에서 품었던 알에서 갓 부화한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면 어미 새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와야 한다. 풀숲과 나뭇잎 사이, 호수와 갯벌에도 내일을 기약하는 생명들의 약동을 본다.

먼저 부화한 어린 저어새들이 어미의 보호가 미치는 곳까지 움직이며 날갯짓을 배울 무렵, 커다란 논과 이어지는 방죽에 막 변태한 두꺼비들은 오밀조밀 모여 적잖은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기만 기다린다. 비가 내리는 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어린 두꺼비들이 방죽 옆 아스팔트를 넘어 숲으로 필사적으로 풀쩍이며 이동할 것이다. 이때 자동차 바퀴들이 일생일대 천적이 된다.

어느 정도 두툼해진 잎사귀를 갉을 수 있는 애벌레는 머지않아 번데기로 변해 외관이 화려한 나비나 수수한 나방이 되겠지만, 거의 자란 애벌레는 아직 둥지 떠나기 전인 어린 새들에게 더 없이 실한 먹이다. 애벌레의 공격을 운 좋게 피한 잎사귀는 완전히 단단해져 탄소동화작용에 전념하겠지만 가을되면 낙엽이 되어 떨어질 테지. 한낮 봄볕이 점점 뜨거워지면 굵은 봄비가 온다. 비가 굵어지면 땅속 맹꽁이들이 슬슬 채비를 할 것이다. 장마 시작할 때 알을 낳아야 여름 땡볕에 고인 물이 마르기 전까지 맹꽁이는 성체로 변태할 수 있다.

맹꽁이가 본격적으로 울기 전부터 포도와 같은 과일나무에 흔히 중국매미라 하는 주홍날개꽃매미들이 농부를 괴롭힐 것이다. 2006년 언저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주홍날개꽃매미는 해마다 개체를 불렸는데, 요즘 줄어드는 추세라고 생태학자는 말한다. 나무줄기에 허옇게 버짐 피듯 붙여 놓은 알집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런히 제거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런 노고가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천적이 자연에 생긴 까닭이다. 주홍날개꽃매미의 알에 기생하는 벌 종류가 생겼다는 건데, 성체를 잡아먹는 종류도 머지않아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중국에 주홍날개꽃매미를 잡아먹는 도마뱀이나 새가 있다면 우리 자연에도 있을 터.

황소 울음소리로 짝을 찾는 북미 원산 황소개구리가 요즘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천적이 생긴 까닭이다. 황소개구리가 고유 생태계의 작은 동물을 마구 먹기 어렵도록 백로와 같이 습지를 성큼성큼 새들이 커다란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걷어먹고, 수달이나 너구리들이 성체를 너끈히 잡아먹으면서 자연에서 개체수가 조절되기 시작했다. 황소개구리처럼 주홍날개꽃매미의 천적이 등장해 조절해줄 게 틀림없다. 처음 낯설거나 섬뜩해 피했지만 차차 익숙해지면서 통제될 것이다. 생태계에 생물다양성이 보전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인천에 논밭이 남았고 멀지 않은 곳에 자연스런 산이 보전되었을 때, 밖으로 나가면 다양한 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농약 치던 논밭이 매립돼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에 뒤덮인 요즘은 통 눈에 띄지 않는다. 논에 흔했던 참개구리를 보려면 이제 논에 물이 고이는 시골을 찾아가야 할 판인데, 거기도 생물은 다양하지 않다. 단순한 품종을 농작물을 다량 파종한 경작지에 살충제와 제초가가 마구 살포되니, 개구리 소리를 들으려면 유기농을 고집하는 섬 지방으로 가야 한다.

생물다양성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습지다. 바닷가의 갯벌이 그렇고 강과 가까운 늪이 그렇다. 우포늪에 가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새 생명들로 충만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주민과 지방단체가 마음으로 보전하는 늪은 우리나라에 그리 많다. 하구의 습지와 드넓은 갯벌도 하구언과 매립으로 틀어 막혀 질식되거나 점점 위축된다. 이제 4대강도 생물다양성을 잃었다. 가장자리에 오래 쌓였던 모래와 자갈을 잃은 만큼, 사라진 강은 흐르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는 모래더미와 더불어 썩어갈 것이다. 한데 완만하게 둑으로 이어지던 가장자리를 잃고 느닷없이 깊어진 강물은 부실한 대형 보를 붕괴시킬지 모른다. 관련 전문가들이 그런 재해를 벌써부터 걱정하는데, 정작 그 피해는 주변 생태계와 농민에게 집중될 것이다.

자연은 지위에 억매는 사람과 달리 유연하다. 아직 복원력이 남았다. 인간이 비키면 금방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비무장지대는 물론이고, 휴식년제를 맞는 등산로와 계곡이 그렇다. 근교의 습지를 메마르게 하는 약수터를 잠시 쉬게 해도 찾아오는 생물은 부쩍 늘어날 것이다. 갯벌과 습지의 매립과 개발을 멈추고 4대강의 대형 보를 터서 물을 흐르게 하면 금방 회복될 것이다. 지리산 용담계곡을 다시 막아 부산시민의 상수원으로 수몰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도시 곳곳에 녹지와 습지를 만들고 녹지축으로 연결하면 공원에서 많은 자연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배정된 예산이 있으므로 공원의 나무에 살충제를 뿌리는 행위는 애벌레의 내성을 키우는 동시에 새들을 쫓아내므로, 자제해야 한다.

지난 5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다. 생물다양성이 위축되는 곳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서 유엔이 생물다양성의 날을 지정하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곧 여름이 오면 논과 주변 습지에 금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가 본격적으로 짝짓기에 나설 것이다. 국토해양부의 집사에 불과한 환경부도 인정한 보호대상종인 금개구리와 수원청개구리와 달리, 개발 예정지에 자주 나타난다는 이유로 보호대상종에서 해제하려는 맹꽁이는 터전을 지킬 수 있을까. 새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자연의 친구들을 걱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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