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과 만난 효(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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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과 만난 효(孝)
  • 김학균
  • 승인 2012.05.30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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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김학균 / 시인

 

"무릇 효는 덕의 근본이라"고 한 공자의 말은 효의 바이블 효경(孝經)의 첫 문장이다. 관념적인 설교가 아닌 생활의 기본 덕목으로 동양인에게는 기본 규범으로 존재해 왔다. 사람 살이의 가치관으로 각인된 '효(孝)'는 과연 문학 작품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잊어버림과 잃어버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첫 문장이 섬뜩하게 다가온 말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아주 편안한 휴식의 시간 아니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시간. 사람들은 이 문장을 접하고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잡음과 동시에 살갗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어느 누군들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라면 초연할 수 있을까. 날 선 실랑이가 이어지며 엄마를 잃어버린 각자(가족)의 모순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들짐승처럼 읽는 자의 정수리를 파고드는 갈등의 연속은 작가의 계획된 소설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고백하는 도입부부터 불효를 내세우고 있다. 실종신고를 내고 주변을 뒤지고 하는 소란 뒤 미아를 찾듯 전단지를 만들며, 잃어버리기 전 잊어버린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추어내며 순간순간 모면하듯 지나온 엄마에 대한 일들이 불거진다. 그리고 현실로 다가와 우리네 일상에 잊어버린 엄마의 흔적이 불쑥불쑥 찾아든다.

생일상을 받고자 상경한 늙은 엄마의 실종으로 이어지는 충격적이고 참담한 사건의 연속. 사실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 이미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처절한 고해성사. 불효와 효도를 명징하게 건져 올릴 수 있는 소설로, 메시지의 폭과 울림이 크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엄마에게 몹쓸 짓을 '캐리어'로 달고 등장하는 가족사 이야기. 하나 엄마는 이미 잊어버리며 용서한 상태. 이혼하며 외손녀까지 달고 온 딸, 전과 5범의 아들, 그리고 늙다리로 동가식서가숙하는 또 하나의 아들을 둔 엄마는 자식들에게 '밥 먹이기'가 사랑으로 이어진다.

"휴, 어릴 때 고기 한 번 제대로 못 먹이고 정부미만 먹였으니 애들이 부실해서…."

세상에 허우적대며 패배의 쓴 맛을 먹고 돌아온 자식들을 잘 못 먹여서 생긴 자신의 탓이라고 넋두리처럼 말하는 늙은 엄마의 사랑이 열리는 글.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엄마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월은 흘러, 해외로 도피했던 아들의 전화 첫 안부는 엄마다.

"엄마는 잘 계시니?"

"엄마 작년에 돌아가셨어."

송수화기를 귀에 댄 이편과 저편은 울기 시작한다.

마지막 남은 효(孝)랄까. 살아있을 때 잘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무언가 한 조각 미안한 마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만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속 자식들은 키운 어머니에게 마음으로 효를 다한다.

<그날>의 피천득

가장 불효자라면 임종일 터. 죽은 자에겐 말이 없다. 그 육신 앞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그날>은 피천득의 수필로서 불효자가 된 그날을 그리고 있다. 50여년 전 그날, 위독한 전보를 받고 기차에 올라 차창으로 펼쳐진 풍광과 어미소 옆에 있는 송아지를 부럽게 여기며 우는 어린 주인공. 그러나 엄마의 집에 아무것도 모른 채 누워 있는 엄마는 꼼짝도 않는다. 숨을 거두기 바로 전 아들의 이름만을 부르며 갔다. 사실 피천득은 <아큐정전>의 작가 노신의 작품 <아버지의 병환>에서 기인된 그날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버지 죽기 전에 '아버지 아버지' 하고 계속 불러댔다." 계속해서 불러댄 아버지. 그때를 기억하면 최대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불효의 끝은 어디일까. 피천득은 노신의 글을 보며 부모가 저 세상으로 떠날 때 미련이 남도록 하는 것이 씻을 수 없는 불효라고 했다. 아무리 성장해도 부모 앞에서는 어린것을 어찌 두고 가나 싶은 마음. 누구나 마지막 불효라도 가시는 길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불효를 느끼는 순간부터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것이 효자가 아닐까.

김학균의 <박꽃>

내남적 없이 적빈의 세월이던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연민과 사랑을 뛰어나게 점묘했던 <파시>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삶과 사물의 간명하고도 또렷한 사생, 이를 통한 시적 리얼리티의 맛은 <박꽃>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승 나그네가 아닌 듯한 어머니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했다.

아무도 없는 한낯/ 박꽃이 피었다/ 눈같은 박꽃/ 바람도 없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수의처럼 흰 웃음 지으며 하늘 보고 있는 어머니/ 꽃속에 계시다. <박꽃> 전문

어머니의 곡진한 애경(愛敬)을 하얀 '박꽃. 눈. 수의. 흰 웃음' 등 청초하고 정결·창백한 빛깔 이미지를 집약해 어머니를 향한 그윽한 사랑을 선명히 데생하며 핵심적 모티브를 형성해 효(孝)를 그렸다.

최근 '효'라는 단어가 고루하고 완고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나 공자의 말을 다시 새겨보자. "효는 덕의 근본, 인격의 기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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