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건강을 위한 희망을 가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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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건강을 위한 희망을 가꿔야
  • 김인수
  • 승인 2012.06.08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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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인수 / 햇살요양병원 원장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편안한 상태(well being)로 규정한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건강이라는 포괄적 개념은 사람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존재상황을 역동적이고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의학적 진단인 질병의 유무로 건강을 확인하려는 것은 제한적이고 불충분하다. 사회경제적 조건, 사람들  간의 관계, 환경의 변화와 상호작용 등 이미 알고 있는 질병 이외의 결정적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의 건강상태와 그를 둘러싼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증거에 근거한 의학이 갖는 범주는 환자의 상태를 관련(의도)된 몇 가지 통제변수를 통해 인과관계를 추론해서 질병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살이라는 개인적, 사회적 현상에 개개인의 정신병리라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생물학적, 심리적 변화에 대한 전문적 해설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체적인 현실을 개별화-파편화해 개인들이 처한 상황을 그 사회병리와의 관계에서 역동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개인적 책임 내지 오류로 한정을 짓는 경향이 압도적이다.

한 사회의 병리가 심각해지면서 다양한 경고음이 울부짖음으로, 때로는 거친 몸짓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병리를 진단할 수 있는 권위로서 전문성이라는 틀은 일반적 상식과 정보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완고하게 상황의 이해를 제한하기 일쑤다. 즉, 진실에 다가서려고 함께 노력하기보다는 기존 질서와 이해집단의 현재 상황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에 침묵하거나 반박논리 생산에 복무를 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전문성의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사실 이러한 태도가 원칙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태도가 아닐 뿐더러 현상을 호도하는 역할을 함으로서 대중으로부터 불신을 불러와 스스로 권위를 추락시켜온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 광우병 논란과 삼성전자 직업병논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집단적 자살 현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충격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집단의 방임적 태도는 여전하다. 노인들의 최근 자살 급증에 대해서도 전문집단과 정부의 대처는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 극도로 이기적으로 되어버린 사회에서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책임질 필요 없는 데 대해 공연히 소신에 따른 위험을 무릅쓰고 별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맬더스식 고령화 사회에서 우생학적 결과로 치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혹 그럴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밥그릇 싸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대해 책임질 주체가 없이 단발적인 소동 형태 이벤트나 전시적 행사로서 이러한 사회적 병리의 완화와 해소를 기대한다는 것은 뜬 구름 잡기이다. 우울증을 스트레스 해소의 날로 날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들이 아니다. 사실 이해관계가 있는 제약회사들의 스폰서 없이는 생각도 하지 못할 발상이다. 제약회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들 행사를 지원할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이 2006~2010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0년 51만6000명으로 2006년 44만1000명보다 17% 가량 늘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우울증 환자는 늘어나 4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나이대별 환자 수 분석에서는 20대부터 70대까지는 계속 늘어나며, 특히 50~70대에 환자들이 많다.(한겨레 신문 2012. 5. 15)

정신건강의 파국적 결과인 자살의 경우, OECD 국가 중 세계 1위로 전 연령층에서 급격한 증가를 하고 있다. 특히 노인자살의 경우에서 대부분 OECD 국가들의 최근 통계수치가 감소를 보이는 반면에 유독 대한민국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원인규명이 시급하다. 일반적인 이유로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를 든다면 왜 유독 대한민국의 노인층에서 비관, 염세적 이유로 자살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사회적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 의문들이 솟구친다. 한 사회 리더십의 정점에서 이러한 사회적 건강문제를 인식하고 자원운용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시대정신이 성장에서 복지로 바뀌었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 실행의 리더십은 어디에 있나? 시민단체인가 노동조합인가. 아니면 정부관료집단인가. 아니면 전문가 집단, 아니면 정치인들 누구?

물론 시대적-사회적 요구가 한 개인이나 몇몇 집단의 노력으로 달성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앞선 사람들의 발자취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하기에 미래 사회의 건강을 위해 남아 있는 희망을 모아 본다.

세계 제일의 자살대국에서 복지국가로 발돋움하는 시대적 사명에 과연 누가 헌신할 것인가. 그 경쟁은 아름답고 웅장할 것이다. 오는 12월 대선이 모든 국민에게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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