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삼 - 세계 최고 명품으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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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삼 - 세계 최고 명품으로 인정
  • 이창희
  • 승인 2012.06.1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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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세계인들은 왜 한국인삼을 제일로 치나?

인삼이 약명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적은 중국 전한의 원제시대(BC:33~38)에 사유가 저술한 급취장이다. 인삼을 '蔘'으로 기록하였으며 후한(AD:196~220)에 장중경이 저술한 상한론에는 인삼을 배합한 21개 약처방이 기재되어 있자. 인삼을 약의 조제에 이용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인삼이 이용되었으며 중국에 예물로 보냈다. 또한 많은 교역을 하였던 바 이에 관한 기록은 중국의 많은 사료와 문적을 통해 고증된다.

중국 양시대 도홍경은 그가 저술한 명의별록중에 백제 무령왕(12년, AD:513년)은 양의 무제에게 인삼을 예물로 보내었음을 기록하였다. 당시대 문적인 책부원구에는 신라 진평왕이 당의 고조10년(AD:627)에 사신을 통해 인삼을 예물로 보내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 인삼에 대해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실록에서도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적에는 '人參'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조선왕조 이후에는 모두 '人蔘'으로 통일되어 있다. 인삼을 영어로는 'Ginseng'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인삼의 중국 발음인 'Jenseng'이 와전된 것이다. 인삼의 고유 명칭은 '심'으로서 그 어원이나 시작 연대는 알 길이 없으나 우리나라 의방서인 동의보감, 제중신편 및 방약합편에는 인삼의 향명은 '심'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고전적인 중국 본초서에 기록된 인삼을 살펴 보면, 1895년 러시아의 북경주재 영사관인Bretschneider가 중국 본초학을 연구하여 '고대중국 본초 약물서'를 발간한 서적 중에서 인삼과 관련된 중요한 문헌으로 Pen King(=本經神農本草經), Pie Lu(名醫別錄), Wu Pu(=吳氏本草, 吳普)가 있다. 주요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순 : 신라국에서 공물로 바치는 인삼은 사람과 비슷하며 수족이 있다. 길이는 30㎝ 정도이며 압착하며 삼(杉) 나무상자에 넣어 붉은 비단으로 싸서 보관한다. 중국 사주의 인삼은 소형이며 아무 가치도 없다.

이시진: 고대 산동지방은 지금의 남동 서산성을 말하는 것이며 인삼이 자생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인삼을 재앙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인삼을 왕에게 아무 보상도 없이 헌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되고 있던 인삼은 만주지방에서 도입되었다.

인삼 생산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며 고려를 칭하는 것이다. 고려인삼이 대량 중국으로 수입되었으며 고려사람들은 채소와 같이 재배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 본초서 고전을 통해 한국인삼은 이미 옛날부터 재배법이 개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인삼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약용 식물로서 시대에 따라 화폐를 대신한 경제식물로 국가 재정을 도왔다. 국난이 있을 때는 정치식물로서 국권과 민생을 수호하는 중대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고려삼을 세상에 알린 학설로는 고대 노자의 약용설과 한방의학의 원조를 이루는 신농씨의 '약초발견설'과 자연생삼인 산삼을 논한 동의서가 있다.

백제 온조시대와 고구려 20대 장수왕 23년(AD 435년)에는 위국과 수교품으로 인삼을 취급한 기록이 있다. 백제 25대 무령왕 12년에는 양나라와 인삼을 수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628년 당태종이 중국을 통일하자 신라와 번창한 수교·교역이 시작되었다. 629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과 중국 대륙 제국과의 인삼 교역이 진행되었다.

신라 26대 진평왕 49년(627)에는 당 고조에게 수교품으로 인삼을 보냈다 하였다. 33대 성덕왕 22년(723)과 33년(734) 39대 조성왕원년(799년)에 당나라와 인삼이 수교품으로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46대 문성왕 원년(840년)에 이르러 무역품으로서 인삼의 등장은 크게 발전되었다.

* 신라의 외국 무역은 처음에는 국가 간에 수교와 예물 교환 등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공무역에 의존했으나 차츰 교역 사신과 수행원의 휴대품을 사사로이 매매하는 사무역도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휴대하는 물품은 양이 적고 값이 비싼 것으로 비단에 수를 놓은 것과 인삼, 금은 세공품 등이다. 처음에는 노비에 충당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 차츰 상업 무역으로 발전했다. 초기 인삼 수출품은 주로 산삼-원자재였던 것이 산업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주로 생산 가공품인 생삼을 쪄서 익혀 말린 숙삼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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