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동 무임금', 국회도 예외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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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동 무임금', 국회도 예외는 아니야
  • 윤세민
  • 승인 2012.06.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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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세민 교수 / 경인여대 교양학부(언론학박사, 문화평론가)


국회가 사라졌다

국회가 없다. 사라져 버렸다. 지난 5월 30일로 제19대 국회 임기가 분명히 시작되었지만, 3주가 넘도록 대한민국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다. 아니, 정확히는 개점도 못한 상태다. 국회법 제5조 제3항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의 임시회는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는 지난 6월 5일 당연히 개원했어야 했다. 결국 법의 제정과 준수를 목표로 하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자기가 만든 법을 스스로 어기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 밥그릇 싸움 탓이다.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는 초반부터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여야 모두 원구성 협상에서 밀리면 12월 대선까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언론사 파업, 민간인 불법 사찰 등 현안에 대한 국정조사를 원구성 협상과 연계하는 것도 그래서다. 새누리당이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제명안 처리와 임수경 민주당 의원의 막말 파동 등 종북문제로 야당을 압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야 모두 대선전략 차원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거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4대 때는 총선 이후 지방선거, 대선까지 겹치면서 정쟁이 극에 달했고, 원구성까지 무려 125일이나 걸렸다. 18대 국회도 광우병 파동과 4대강 사업 등으로 여야가 대립하면서 88일이 소요됐다. 이번에도 최악의 경우 국회 개원도 못한 채 여름을 보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모든 현안이 대선과 맞물리면서 정상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대선 블랙홀'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생 국회'는 허구였는가?

19대 국회 개원이 늦어지면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실망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여전히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지루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상임위 배분 협상에 이어 내곡동 사저 논란과 민간인 불법사찰을 놓고도 여야는 의견이 갈리는 상태다. 새누리당은 특검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민주통합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마저도 국회 개원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정국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형국이다.

개원 지연을 놓고서도 서로 '네 탓'이라며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만 급급하다. 거기에 뜬금없는 사상검증과 색깔논쟁으로 국민의 피로감을 더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통합진보당 사태는 종북논란과 함께 신·구 당권파의 당권경쟁 등으로 눈꼴사나운 현재진행형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총선 기간 동안 여야는 너나없이 '민생 국회'를 내세웠다. 서로 민생을 최우선시 하겠다며 표를 구했고, 그렇게 19대 국회가 탄생했다. 그런데 민생은커녕 국회 자체가 비었다. 총선 내내 외쳤던 민생을 위한 정치는커녕 스스로 문조차 열지 못하는 '식물 국회'가 된 것이다. 이는 말로만 '민생'을 외쳤지, 정작 민생은 없는 속 빈 19대 국회의 단면이다.

최근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국회 개원에 관한 관심도 멀어지는 듯하다. 국회 공전이 길어질수록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결국 19대 국회는 출발부터 '불법 국회'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안게 됐으며,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됐다.

'무노동 무임금',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갈 대목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다. 이미 사회적 대세가 되어 있는데, 국회만 예외일 수 없다. 새누리당은 얼마 전 연찬회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의 '무노동 무임금'은 개원 지연이나 장기 파행, 의원의 구속·출석 정지 등으로 의정 활동이 불가능하면 그 기간만큼 세비를 반납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했지만, 법제화를 하지 않고 계속 시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정대로라면 국회 사무처는 의원들에게 오는 6월 20일 첫 세비 1149만원을 지급한다. 새누리당이 19일 의원총회에서 이와 관련한 당론을 정한다니 두고 볼 일이다. "새누리당이 국민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민주당도 물론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국민의 예의 주시 대상임은 분명하다.

솔직히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쩨쩨하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세비에 그렇게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요즘 국회가 하는 행태가 하도 가관이기에, 하도 밉상이기에 그렇다. 유권자들은 일 안하고 세비 안 받는 양심적인(?) 의원보다는, 세비를 더 받더라도 유권자들을 위해, 지역을 위해,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의원이길 바라는 것이다. 더 이상 불 꺼진 국회, 텅 빈 국회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 비워놓고 국민만, 민생만 바라보라

국회의원은 직업 정치인이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당리당략과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자신들의 터인 정치의 장마저 열지 못한 채 국민과 민생으로부터 점점 동떨어지고 있다. 타협과 조정보다는 힘과 폭력, 고집만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그야말로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노라고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도 말이다.

더 이상 국민을 피곤케 하지 마라. 더 이상 국민을 분노케 하지 마라. '무노동 무임금' 주장도 좋지만, 우선 여야가 국회 개원을 위해 무조건 머리를 맞대라. 모든 걸 비워놓고 국민만, 민생만 바라보라. 그것이 자신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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