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리 시인들의 '어머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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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우리 시인들의 '어머니 사랑'
  • 최일화
  • 승인 2012.06.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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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최일화 / 시인


10여 년 전쯤이었다. 미국에 한 달 간 배낭여행할 기회가 있어서 로스앤젤리스를 비롯한 서부에서 2주일, 동부 뉴욕과 캐나다 등지에서 2주일을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우연히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도중 도시 외곽에 있는 방대한 규모의 아룰렛(Outlet)에 들러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건을 구경하였다. 이곳 저곳 '아이쇼핑'을 하다가 내 발길이 머문 곳은 서적 코너였다. 정가보다 싸게 판다고 하기에 책이나 한 권 사려고 매장을 둘러보다가 눈에 띈 것이 <Mother, I love you forever>와 <I Keep Falling in Love with You>이다.

하나는 어머니에 관한 시만 모아놓은 시집이고, 하나는 사랑에 관한 시만 모아놓은 시집으로 둘 다 Susan Polis Schutz라는 시인이 편집한 것이다. 사랑에 관한 영미 시는 많이 읽어본 터라 새삼스러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에 관한 시를 모아놓은 것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머니' 하면 나는 제일 먼저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생각난다. 물론 내 어머니를 포함해서이다. 남존여비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기도 하고 자유와 평등이 박탈당하기도 했다. 한이라고 하는 독특한 정서를 가슴에 품어야 했던 쓰라린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어머니들은 강인한 모성으로 자식들을 낳아 길렀고, 그런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마음 속에 각별한 정서를 잉태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의 모성은 자식들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기에 우리는 '어머니' 하면 제일 먼저 우리의 어머니, 한국의 어머니, 아니 내 어머니가 가슴에 사무치게 된다. 아주 당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하던 차에 외국의 한 대형 아울렛에서 발견한 아담하게 꾸며진 어머니에 관한 시모음집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행이 끝나고 귀국하여 나는 찬찬히 시집을 읽어보았다. 시는 언어와 의미를 최대한 압축하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미전달이 수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시집의 시들은 평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시집을 읽어보다가 나중에는 대학노트에 한 편 한 편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번역을 하면서 우리나라 시인들의 어머니에 대한 시와 미국 시인들의 어머니에 관한 시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다. 그럼 먼저 우리 시를 한 편 보기로 한다.

어머니

                          한하운

어머니
나를 낳으실 때
배가 아파서 울으셨다

어머니
나를 낳으신 뒤
아들 뒀다고 기뻐하셨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는 길을 슬퍼하셨다

어머니
흙으로 돌아가신
말이 없는 어머니

이 시는 낳을 때부터 죽은 후에까지도 어머니의 사랑을 놓지 못하는 자식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낳을 때부터 그리고 한 평생 다 살고 저승으로 떠나면서도 자식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이 드러나 있다. 즉, 어머니와 자식 간 뗄래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도 관련되고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서 '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분적으로 여성이 차별을 받던 사회에서 모성애는 더욱 강렬하게 발휘되었을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어쩌면 차별과 멸시에 대한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헌신으로 자란 자식들은 그 희생과 사랑의 어머니상을 영원히 가슴에 품게 된다. 가슴 속에 담긴 어머니는 바로 한국 시인들의 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럼 미국시인의 시를 한 편 보자.

사랑하는 어머니

                                       디나 베이서

오늘이 어머니의 생일도 아니에요
어머니의 기념일도 아닙니다
어머니날도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오늘일 뿐이에요
제가 더 이상 돈이 필요해서도 아니에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그냥 말하고 싶어요

Dear Mother

                                   Deanna Beisser

 I know it's not your birthday
or your anniversary
or even Mother's Day
It's just an ordinary day
I don't need any money
and I don't have a problem
to solve....
I just wanted to say
"I love you."

이 시에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그렇지만 한 많은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눈물겨운 회한이 서려 있지는 않다. 돈이 필요하면 어머니를 찾았는데 오늘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어머니와 의논하고 힘을 얻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아니다. 특별한 날에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곤 했지만 오늘은 그런 날도 아니다. 그냥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는 다분히 사춘기적인 감상이 배어 있는 시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애틋한 감성이라기보다는 어머니와 자식 간 객관적이고도 이성적인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머니와 자식 간 관계가 상당히 객관적이고도 이성적인 기반 위에 설정되었다는 점이 이 시집의 대부분의 시에서 감지되는 보편적 특징이다. 그럼 영시 하나를 더 본 다음에 우리 시를 한 편 더 보기로 한다.

어머니

                                  쉐일라 디 스트릿트

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은 곧 우리들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어머니는 저를 지지해주셨어요
제가 잘못을 했을 때라도
어머니는 제 편을 들어주셨어요
그 때가 바로 제가 어머니를 가장 필요로 하는 때임을
어머니는 다 깨닫고 계셨습니다
저를 철두철미 믿어주셨기 때문에
저도 제 자신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저의 성장을 돌봐주셨지요
부모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의 친구가 되어주시기도 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어머니를 의지할 수가 있습니다

Mother

                                    Sheilah D. Street

Whenever I have a problem, it
becomes our problem.
You support me in whatever decisions
I make,
and even when I'm wrong, you
stand beside me
because you realize that's
when I need you the most.
Your belief in me is so strong that
you've made me believe in myself
Even though I am no longer a child, you are
still helping me to grow.
I can always depend on you,
not just because you're my parent,
but because you're also my friend.

이 시에서도 한결같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문제가 있을 때 함께 해결해주고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내 편을 들어주는 어머니, 내가 커서 독립한 후에는 친구처럼 옆에 계시는 어머니를 노래하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이나 눈물겨운 희생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다. 자식에게 전 삶을 바친 신격화된 어머니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우리 시를 한 편 더 보자.

어머니날에

                                  서정주

"애기야......"
해 넘어가 길 잃은 애기를
어머니가 부르시면
머언 밤 수풀은 허리 굽혀서
앞으로 다가오며
그 가슴 속 켜지는 불로
애기의 발부리를 지키고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돌아온 애기를 껴안으시면
꽃 뒤에 꽃들
별 뒤에 별들
번개 뒤에 번개들
바다에 밀물 다가오듯
그 품으로 모조리 밀려들어오고

애기야
네가 까뮈의 이방인의 뫼르쏘오같이
어머니의 임종을 내버려 두고
벼락 속에 들어앉아 꿈을 꿀 때에도
네 꿈의 마지막 한 점 홑이불은
영원과, 그리고는 어머니뿐이다.

물론 내가 읽은 어머니에 대한 미국시 모음집이 최고 시인들의 탁월한 시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런 시를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와 비교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서양의 시를 접해 보지 않다가 모처럼 구한 수십 편의 어머니 시 모음집을 궁여지책으로 텍스트로 삼았음을 독자는 이해하기 바란다. 이 글이 동서양 시의 학문적 비교가 아니라 단지 미국 시인들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살펴본 것에 불과하다는 점도 참작하기 바란다.

위 시는 미당의 시다. 이 시엔 동양적 신비감이 시의 전편에 흐르면서 신화적 상상력이 동원되어 있다. 물론 서양의 시에도 어머니가 신격화되어 있는 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로 삼은 시집에는 한결같이 어머니와 화자가 일정하게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특징이 발견된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미국 시인들의 한결같은 어머니 사랑과 미국 어머니들의 지극한 자식 사랑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효라고 하는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는 말로 우리의 효 문화를 자랑으로 삼는다. 그러나 자식의 지극한 어머니 사랑, 그것이 바로 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화와 관습에 따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모와 자식 간 사랑에서 어찌 동서양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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