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밝혀야 한다
상태바
박근혜는 밝혀야 한다
  • 이우재
  • 승인 2012.06.22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재의 공자왈 맹자왈]


아비 박정희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자신의 견해 밝혀야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유력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선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니 말이다. 새누리당의 최종 후보는 누구로 결정될까?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최종 후보는? 진보진영은 독자 후보를 낼까? 아니면 야권연대라는 명분 하에 민주당에 양보할까? 안철수는 출마할까? 안 할까? 출마한다면 그 모양새는? 그리고 민주당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할까? 안 할까? 한다면 누가 야권 후보로 최종 선정될까? 그리고 12월에 있을 대망의 최종 결승에서 과연 누가 웃게 될까? 귀신도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라는 우스개소리처럼 이 질문들 중 어느 하나 쉽게 예측할 수 없겠지만, 우리 같은 문외한에게도 다만 하나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새누리당의 후보는 아마 박근혜로 결정될 가능성이 거의 백에 구십구일 것이라는 점이다. 

근 몇 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로서 부동의 일위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여자라는 점도 있을 것이고, 그녀가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동안 비교적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의 상당 부분이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젊은 아가씨를 끼고 연회를 즐기다가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대한민국 사람 중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의 뒤에 죽은 독재자 박정희가 어른거린다는 사실에 대해 야권에서는 역사의 후퇴라느니, 독재자의 망령의 부활이라느니 하며 연일 성토를 해대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측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선거판에서 의례 있는 일이라고 애써 무시하며, 쟁점이 되는 것 자체를 피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그저 피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덮어질 수 있을까?
만일 이완용과 같은 친일파의 후손이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국민 정서상으로는 용납이 안 되겠지만, 사실 엄밀히 따져 보면 그를 비난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연좌제를 부정하고 있어서 아비의 죄는 아비의 것이지 자식에게 그것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중궁에 대해 말했다.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 색깔이 붉고 뿔이 가지런하다면 사람들은 비록 그를 쓰지 않으려 하나 산천의 신이야 그를 버리겠느냐?”(子謂仲弓曰 犂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논어』「옹야」) 공자는 얼룩소의 새끼(아비가 못났다는 뜻)인 중궁이 임금이 될 만하다고까지 하였다.(雍也可使南面-『논어』「옹야」) 아비는 아비이고 자식은 자식일 뿐이다. 아비의 허물을 자식이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선조가 친일파이라고 그의 후손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친일파의 후손이 그저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조용히 살아간다면야 누가 무어라 그러겠는가?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도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그의 선조가 친일파라는 것이 그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미래가 걸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가 자기 선조처럼 또 나라를 팔아먹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선조를 옹호하기 위해 흑과 백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도 대통령에 출마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다. 선조의 친일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는. 그리고 다시는 친일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는.

제선왕이 물었다. “은나라 탕(湯)왕이 폭군 걸(桀)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武)왕이 폭군 주(紂)를 정벌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전해오는 기록에 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가한 일입니까?” “인(仁)을 해치는 자를 일컬어 적(賊)이라고 하며, 의(義)를 해치는 자를 일컬어 잔(殘)이라고 합니다. 잔적(殘賊)의 사람을 일컬어 일부(一夫)라고 합니다. 일부 주(紂)를 주살(誅殺)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맹자』「양혜왕하」) 임금이 도를 잃어 인과 의를 해치고 백성에게 잔혹한 일을 가하면, 그를 일컬어 백성을 모두 잃어 한 사내에 불과해졌다는 뜻으로 일부(一夫)라고 한다. 주나라 무왕이 폭군 주를 죽인 것은, 임금인 주를 신하인 무왕이 시해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잃어 한 사내에 불과한 일부 주를 정의의 칼로 주살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죽였다는 시(弑)가 아니라 마땅히 처벌해야 할 사람을 법으로 심판했다는 주(誅)로 써야 한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왈가왈부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1961년 군형법상 반란, 1972년 형법상 내란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의 헌법을 유린하고 정권을 탈취하였다는 것은 분명하고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그의 유신 시대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문당하고 감옥에 끌려가야만 했으며, 인혁당 관계자 여덟 사람은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을 근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하였다. 만일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죽지 않았다면 그의 심복 차지철의 말대로 박정희가 동원한 탱크 아래 수백만 국민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의 행위는 전두환에 의해 대통령 시해로 규정되었지만, 후대 역사에서는 분명 많은 인명을 살린 의거로 규정될 것이며, 맹자에 의한다면 주(誅)로 표현될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길은 둘이니 인(仁)과 불인(不仁) 뿐이다.’ 그 백성을 난폭하게 대하면, 심한 경우는 그 몸이 죽고 나라가 망하며, 심하지 않은 경우라도 몸이 위태로워지며 나라가 줄어든다. ‘유려(幽勵, 중국 주나라 시대 백성에게 난폭한 짓을 하다 쫓겨난 폭군 유왕과 여왕)’라고 이름이 붙게 되면 비록 자손들이 효성스럽고 자애롭다 하더라도 백 세대가 지나도록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맹자』「이루상」)

역사의 평가는 엄정하다. 일단 폭군이라고 낙인이 찍히게 되면 그 자손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으며, 아무리 변명하려 해도 그 낙인을 지울 수 없는 법이다. 최근 법원은 유신 시대 때 처벌받았던 대부분의 시국 사건에 대해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 등을 이유로 일률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법원까지도 뒤늦게나마 박정희의 시대가 정의가 실종된, 폭력과 야만이 횡행한 불의의 시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그저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그 아비 박정희가 저지른 죄과에 대해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그 아비 박정희가 그렇게도 말살하려고 했던 그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에 도전하려고 하면서, 그 아비의 죄과에 대해 침묵하고, 그 아비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당했던, 심지어 고귀한 생명까지 잃어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은 옳은 자세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 야만적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부 수구세력의 지지를 기대하며 아비의 죄과를 호도하려고까지 하고 있다면 이는 더더욱 아니다. 박근혜는 이제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비 박정희가 범한 군사반란과 국가내란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유신 시대 자행되었던 그 많은 인권 탄압과 범죄 행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박근혜가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의 아비처럼 또 그런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밖에 볼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