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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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큰 바위 얼굴'
  • 양진채
  • 승인 2012.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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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얼마 전 영인문학관에 다녀왔다. 박완서 선생 1주기를 추모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든의 나이에 마지막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시던 선생은 담낭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작년 1월 타계하셨다.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관에는 선생님의 자료가 주인 없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40 년 전 박완서 선생이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당선되어 쓴 소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글을 쓴다고 아이들에게나 남편에게 소홀하지 않겠다는 글이었다. 좋은 주부이자 소설가로 악착같이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 말을 영인문학관에 와서 새삼 확인했다. 육필 원고, 메모와 편지, 작가의 옷과 장신구, 신혼 초에 쓰던 그릇세트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JANOME'라는 상표의 재봉틀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은 창작활동 중에도 아이들마다 옷본을 다 따로 만들어 직접 옷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선생의 맏딸인 수필가 호원숙 선생은 전시에 맞춰 발표한 '엄마의 물건'이란 글에서 "엄마는 그 재봉틀로 딸들의 옷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주셨던가. 그 옷을 가봉하여 입히면서 보였던 자랑스러운 눈빛은 얼마나 사랑에 가득 차 있었던가." 라고 회상했다. 엄마가 지어준 옷을 입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절로 눈에 그려졌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외출하면서 딸에게 쓴 이런 글도 있었다. "아침에 끓인 멸치국이 괜찮은 거 같아 수제비 반죽을 해 놓았으니 떠먹어라. 수제비 뜨는 법은 먼저 국이 팔팔 끓거든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 다 뜨거든 국자로 한번 저어서 서로 붙지 않게 하고 뚜껑 덮어서 한번 끓여라. 곧 먹을 수 있다."

나는 '손으로 얄팍얄팍 떠 넣는데, 찬물을 한 공기 마련해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뜨면 반죽이 손에 묻지 않는다'는 글귀에서 글을 쓰면서도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던 엄마로서의 다감한 선생은 느낀다.

날이 갈수록 핵가족, 독신주의가 늘고 있고, 이러저러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는다. 삶의 다양한 가치관이나 곡절을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박완서 선생의 체취를 느끼고자 찾았던 전시회에서 나는 작가가 아닌 가족구성체로서의 엄마를 보게 되었다. 당선소감에서 했던 그 말을 끝까지 실천했던 작가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뜻밖에 전시회장 한 쪽에 걸린, 내 스승인 윤후명 소설가가 그린 '팔순의 엉겅퀴'를 보게 되었다. 윤후명 선생은 얼마 전 첫 개인전 '꽃의 말을 듣다'를 가졌는데, 타오르듯 붉은 엉겅퀴 그림들 사이에 '어머니와 나'가 있었다. 초승달이 떠 있는 밤에 어머니가 빨간 꽃을 든 아이를 맞이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투박한 붓질로 조형된 어머니는 무채색 화폭에서 자식을 향해 '큰바위 얼굴'처럼 서 계셨다. 어두운 색채 때문인지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이 진하게 느껴졌다. 새삼 어머니의 존재가 무겁게 다가온다.

전시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부평시장에 들러 오이도 사고 호박도 사고, 감자도 샀다. 모처럼 수제비를 만들어 먹을까, 새콤달콤한 오이무침을 할까 고민하며 오다가 문득 짐을 한 손으로 옮기고 휴대전화를 꺼내 '엄마'라고 저장된 번호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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