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꾼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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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꾼 어른들
  • 박병상
  • 승인 2012.07.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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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보봉(Vauban)에서 기본적인 교통수단은 보행과 자전거다.

생태도시와 자연 에너지 자급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이따금 독일을 다녀올 기회가 생긴다. 얼마 전에도 다녀왔다. '환경수도'라 흔히 칭하는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신도시, '보봉 마을'을 다시 방문했다. 벌써 세 번째다. 프랑스 군이 2차대전 뒤부터 주둔했던 프랑스 인접 지역인데,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에너지와 물을 자급하고 대부분의 생활이 지역에서 가능한 '컴팩시티'를 최대한 추구했다. 안정된 보봉 마을은 공동주택 몇 동을 신축하고 있는데, 외부 에너지가 전혀 필요 없는 이른바 '패시브 하우스'였다.

승용차가 보이지 않는 보봉 마을은 보행자와 자전거의 천국이다. 뒤에서 차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니, 마을을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 타는 이의 표정은 밝다. 시내로 연결되는 경전철이 확보돼 있으니, 자동차를 아예 없애는 주민도 더러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마을 외곽에 따라 마련한 공동 주차장에 차를 넣는다. 마을 밖 직장이나 프라이부르크 시내 대학을 오가는 이는 경전철을 이용하거나 태양광 발전 패널로 지붕이 장식된 커다란 주차 빌딩에 둔 차를 사용한다.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공사 차량 이외 자동차가 없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방문자가 워낙 많은 탓도 있겠지만, 낯선 이를 향한 보봉 주민들의 시선은 대개 따뜻하고, 생활은 편안해 보인다. 여유가 있기 때문일 텐데, 우리네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은 언제나 낯설다. 마을 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장소도 없는 탓이리라. 나무를 숲처럼 조성한 언덕에 미끄럼틀을 놓고, 그늘마다 등걸 의자를 배치한 보봉 마을 놀이터에 어린이만 모이는 건 아니다.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물장난과 모래장난을 하면 엄마들은 그늘에서 수다를 떤다. 남녀노소가 모여 마을 대소사를 이야기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는 놀이터는 마을 공동체의 소중한 공간인데, 우리는 어떤가.

연수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보자.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는 가운데 모래가 깔린 시소와 그네가 마련되고 사각의 지붕 아래 긴 의자가 배치된 놀이터에 초등학생 이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학교와 학원을 순례하는 사이 가끔 들여다 볼 따름이었지만 아기를 데리고 나온 엄마와 손주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들은 자주 보였다. 아이들이 안전한 모래밭에서 놀 때, 엄마와 할머니들은 그늘에서 수다를 떨었다. 저녁이면 학원에서 자유로운 청소년들이 가끔 모여 일을 벌이지만 그들도 모일 장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놀이터는 시방 없어졌다. 시설물을 들어낸 자리에 아스팔트를 깔아 30대 가까운 승용차가 주차될 따름이다.

저녁 시간이 지나면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도 주차를 못하고 집에 들어간 적은 없었는데, 알량한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야 했을까. 근린공원에 화강암 사이 바닥분수가 마련돼 있거나 화학제품 쿠션 위로 물이 샤워기처럼 떨어지는 시설이 있어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시끌벅적 뛰어놀지만, 어른들은 얼씬하지 않는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이 물놀이에 동참하기 부적당하고,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뜀박질하는 이웃과 자전거 타는 학생들이 뒤범벅인 근린공원에서 마땅히 쉴 곳도 없다. 자동차에 밀려 소외되고 말았다.

10년을 살아도 만나면 반가운 이를 만나기 어려운 우리 아파트 단지는 언제나 익명의 공간이다. 친구들을 학교와 학원, 때로 컴퓨터 게임방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정서는 삭막하다. 고급 자동차 종류와 가격은 훤히 알아도 근린공원을 날아오는 새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종류인지 거의 모른다. 아파트 지명도와 평수에 따른 가격 차이로 자신을 평가하는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자연의 생물에 대한 동정심이 약하다. 어려서부터 입시를 준비하는 경쟁에서 몰입하는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을 이웃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지 못한다. 그럴 기회가 아예 없다.

학자들은 자신이 사는 곳의 녹지가 30퍼센트 미만이면 나무가 우거진 자연을 찾아 나가려 한다고 주장한다. 승리를 위한 속도와 경쟁으로 점철하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축물에 치이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건데, 회색도시의 그런 부작용을 먼저 경험한 독일은 도심에 나무가 우거진 숲을 공원을 확보하고,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에 30퍼센트 이상의 녹지를 조성하려 노력한다. 신도시 녹지는 50퍼센트를 지향한다. 그래야 범죄도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녹색 공간에서 이웃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마을에 삶이 뿌리내리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풀이한다. 녹지공간인 마을의 놀이터는 그래서 중요한데, 우리는 속도와 경쟁의 도구인 자동차에 밀려나고 말았다.

경쟁과 속도가 아무리 높은 수입과 안락함을 보장한다고 해도,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생태계의 도움 없이 성공은 물론이고 행복도 지속될 수 없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이 시대 어른들은 놀이터를 없앴다. 이제 좀 되돌아보자. 아이의 성공을 위해 학원을 순회하게 강요하는데, 우리 청소년의 행복 정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맴돈다.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내일을 스스로 준비하지 못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스트레스가 되는데, 깊게 생각해 보자. 아이가 생각하는 실패는 기실 어른의 강박관념일 뿐이 아닌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산과 들을 쏘다니며 자신의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 땅의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성적에 얽매이게 하는 건, 차라리 죄다. 어른들의 강박관념 때문에 어린이 놀이터는 적막하지만, 그러므로 놀이터를 없앨 수 없다.

놀이터가 사라진 아파트 단지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곧 어른이 될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진정 생각한다면, 알량한 놀이터를 부술 게 아니라 어른이 양보해야 한다. 자동차를 과감히 포기하여 주차 면적을 줄이는 만큼 녹지를 조성해야 이 삭막한 시대에 어른다운 일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부모는 집에 일찍 들어와 학원보다 친구와 놀이터에서 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 아이의 내일을 위해 이롭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이웃과 녹지에서 만나 다정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록 새로 꾸몄더라도, 놀이터를 짓밟은 주차장은 본래 모습을 빨리 회복되길 강력히 희망한다. 도대체 부끄러워 아파트 단지 아이들을 바라볼 수 없으니.


보봉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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