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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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 김기범
  • 승인 2012.07.2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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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김기범 / 남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센터장

"결혼이민자들은 항상 정착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잘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하지요."
 
우리 센터에서 근무하는 결혼이민 4년차 통번역지원사에게 한국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센터 개소 이래 찾아오는 신규 회원마다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물었을 때 '의사소통'을 1순위로 꼽았다면, 통번역지원사의 답변은 상당히 고차원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르지 않다. 결국엔 의사소통도 정착을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일 테니까 말이다. 단지 우리 직원의 대답이 유의미하다면, 그것은 결혼이민자들의 사소한 욕구도 모두 '정착'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이해하고자 함은 단순히 현재 생활의 갈증을 해소하고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본다면 항상 그러한 욕구 저변에는 정착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또한 얼마만큼은 그에 따른 불안감과 두려움을 떠안고 지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제결혼을 선택하고 먼 길을 떠나온 결혼이민자, 주로는 결혼이주여성은 개척자이다. 익숙한 환경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신여성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당당하고 용기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 들어오면 약자로 되고 취약계층으로 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어떤 강의에서 우리가 결혼이민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정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하물며 배우자와 시댁 식구들조차도 '불쌍한 것'이라며 측은히 여기는 모습만 보아도 우리가 결혼이민자를 우리 사회와 우리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우월감을 전제한 공여 차원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농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문득 묻고 싶어진다. '누가' '왜' 불쌍한 것인지를.
 
그런데 또한 모순적인 것은 우리 사회가 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정작 서로 섞이고 어울리는 데는 인색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 센터를 이용하는 결혼이민자들을 대상(107명)으로 지역사회 참여 정도를 묻는 설문을 한 적이 있다. 모국인 친구들과의 모임, 배우자 가족들과의 모임, 한국인 친구들과의 모임, 학교 학부모 모임, 지역주민 모임 등 다양한 성격의 모임을 보기로 두고 참여 정도를 물었을 때, 모국인 친구들과 일주일에 1~2회 이상 교제하는 결혼이민자가 50% 이상이었던 반면 지역주민 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42%나 되었다. 자녀 학부모 모임에도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는 답변이 26%였다.
 
이런 결과가 결혼이민자들의 선택에 의한 결론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정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결혼이민자들은 출신국 친구 못지않게 한국 사람들과의 교류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관계에서는 한국 사람을 더 잘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 센터 가정 방문 지도사들(한국인)에게서 '밤낮 없이 결혼이민자들이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고 질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때 더 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결혼이민자들이 지역사회 참여나 학부모 모임 참여가 어려운 것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문턱이 높거나 문이 너무 굳게 닫혀 있어서다. 우리의 지원이 무차별적이고 온정주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대두되는 것도 이러한 한계점에서 비롯한다. 지원은 많지만 그것이 결혼이민자들의 욕구와 필요를 반영하기보다는 주는 사람 입장에서 좋은 것을 나누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 수준에서 문턱 높낮이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들은 정착을 원하고 그 정착의 실마리는 동등한 관계에서 지지해주는 데 해답이 있다. 물론 그 지지는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익히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정착을 보장할 수 없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지지망이 탄탄하지 않으면 말이다. 
 
설문 중에는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나 외국인 주민으로서 의견 제시에 대해 참여 의사를 묻는 문항이 있었다. 놀랍게도 답변의 90% 이상이 (적극)참여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혼이민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 마음대로 그들을 약자로 분류하고 의무를 면제해 준답시고 권리까지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착은 누가 강요하거나 시켜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착은 자립과 정비례한다. 의지를 약화시키면 안 된다. 우리의 도덕 수준을 생색내기 위해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없는 일방적인 지원은 이쯤해도 괜찮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우리 안의 하나의 지체로서, 또한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성인으로서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는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약자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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