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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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매사냥'
  • 이창희
  • 승인 2012.07.2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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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한국의 자랑인 전통 매사냥

매사냥은 세계문화유산이다. 고려시대 당시 인천 계양산 징맹이고개에 국가에서 매방(응방지)을 설치하여 매를 길들이고 왕이 자주 사냥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매사냥은 음력 10월 초부터 이듬해 해동이 될 때까지 길들인 매로 꿩을 잡는 사냥놀이. 옛 기록에는 방응이라고 하였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의 매사냥은 1998년 1월 9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인 전영태에 의해 전통적인 방법의 매사냥이 전승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매사냥이 이어져왔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조에 의하면, 백제 아신왕(392년 즉위)은 지기가 호매하여 매사냥과 말타기를 좋아했다. 또 『삼국사기』 「백제본기」 법왕 즉위년(599) 에 의하면, 백제 법왕은 영을 내려 살생을 금하게 하고 민가에서 매와 새매를 거두어 놓아주었다. 이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매사냥이 매우 성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에서 매를 바칠 것을 요구하므로 세공으로 매를 보냈고, 이를 관장하기 위해 응방을 설치했을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명매 해동청의 공헌으로 명나라와의 곤란한 교섭이 해결된 바도 있다. 조선 태조는 자주 매사냥을 구경했고, 태종은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말을 달리며 매사냥을 자주했다. 문인 김창업은 매사냥을 시로 남길 정도로 좋아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매우 성행했던 매사냥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나, 전북 진안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 매사냥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매는 나이와 포획 후의 연수에 따라 그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첫째, 보라매는 둥지를 떠난 지 6~7개월이 지나 잘 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매를 잡아 훈련시킨 것이다. 곧 둥지를 떠난 지 일년이 경과하지 않은 매이다. 둘째, 초진이는 일년 동안 사육하면서 훈련시킨 것이다. 곧 2년생 매이다. 셋째, 수진이는 3년 이상 훈련시킨 매를 말한다. 넷째,산진이는 ‘산진매’라고도 부르는데, 야생에서 일년 이상 자란 매를 잡아다 훈련시킨 것이다. 다섯째, 육조는 둥지에 있는 새끼매인 추를 잡아와 사육하면서 훈련시킨 것이다. 이 외에 해동청, 백송골매 등도 있다.

매의 주인은 수할치, 매방재, 매부리 따위로 부른다. 매를 잡는 데는 비둘기를 미끼로 매를 유인한 후 그물로 덮쳐잡는 방법, 매의 둥지에서 새끼매를 잡아 양육하는 방법, 매가 밤에 둥지에서 잘 때 올가미로 잡는 방법, 매가 전에 잡아먹다가 남긴 먹이를 미끼로 해 텁치(싸리나무로 만든 큰 광주리)로 잡는 방법이 있다.

매를 잡은 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조련한다. 우선 잡아온 매를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다닌다. 그러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수탉을 잡아 고기를 잘게 찢은 다음 2~3일간 물에 담가 피와 기름을 뺀 후 먹인다. 처음에 매는 씻은 닭고기가 맛이 없어 먹지 않지만 나중에 배가 고프면 먹는다.

매를 처음 잡아왔을 때는 산에서 먹은 것이 있어 파란 똥을 누지만, 며칠 동안 씻은 닭고기를 먹으면 물똥을 눈다. 이는 매의 몸에 있는 기름이 다 빠졌다는 징조이다. 매를 처음 잡아왔을 때는 매 가슴에 살이 많고 단단하지만 물똥을 눌 때가 되면 가슴에 살이 빠지고 물렁물렁하다. 이때쯤 해서 매를 데리고 산에 가서 길들이는 연습을 한다. 우선 매를 놔 줬다가 손에 꿩고기를 들고 유인해 다시 주인의 팔에 내려앉게 하는 연습을 거듭한다.

매가 완전히 길들여지기 전에 두 발목에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끈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는 방울과 함께 소유자의 주소와 이름을 적은 쪽지를 밀납으로 봉한 후 흰 닭의 깃털로 치장한다. 매의 꼬리에 방울을 매다는 이유는 매가 꿩을 잡은 후 땅에 내려앉아 꿩을 잡아먹으려 할 때, 방울소리를 통해 매의 위치를 얼른 찾기 위함이다. 매를 길들인 후 첫 번째 사냥에서 잡은 꿩은 매에게 배부르게 먹이고 3일간 매를 쉬게 한다. 그리고 다시 수탉고기 씻은 것을 먹여서 꿩고기를 먹은 속을 훑어낸다.

그런 다음 며칠 후 방매꾼 곧 몰이꾼을 데리고 매사냥에 나선다. 매부리가 매를 받고 시야가 좋은 산봉우리 높은 곳에 오르면 2~3명의 몰이꾼이 산중턱에서 꿩을 날리면서 “나간다”, “매 부리여” 하고 외친다. 이때 매는 매부리의 손을 떠나 하늘 높이 솟아올라 꿩의 뒤를 쫓아가 잽싸게 발톱으로 쳐서 꿩을 잡는다. 그러면 개부리 곧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개를 풀어놓아 매가 잡은 꿩을 가져오게 한다. 매부리가 매의 먹이로 꿩고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손에 꺼내 놓으면 매가 손에 내려와 먹는다. 매사냥은 음력 10월부터 한식 무렵까지 한다. 이후에는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사냥은 전국적으로 행해졌지만 그 중에서도 함경남도가 단연 으뜸이었고 다음이 평안북도였다. 함남에서는 매사냥으로 북청군과 갑산군이 가장 유명했다. 함경도에서는 보라매를 추매, 초진이를 육두매, 육조를 와추매라고 부른다. 북청군에서는 매부리를 소하치(수할치의 사투리)라고 불렀다. 또한 함경도에서 매의 포획 시기는 가을 9월 하순부터 10월 말에 이르기까지이며 백두산, 갑산, 풍산 등으로 깊은 산골의 일반 새들이 남쪽지방으로 이동하는 때이다. 매가 이 새들을 쫓아 날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음력 9월 한로 때가 가장 좋은 시기인데, 이때 추매를 잡는다. 백두산 같은 원시림에서 새끼를 쳤다가 가을에 남쪽으로 날아오는 매들을 잡기 위해 조망이 좋은 능선을 골라 그물을 치고, 그물 서쪽 밑에 흰 비둘기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서 매어둔다. 그리고 사수막이라는 임시로 만든 움막 속에 숨어 있다가, 매가 높이 솟아 산마루를 스쳐갈 때 끈을 잡아당겨 비둘기를 푸드득거리게 하면, 이것을 본 매가 비둘기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든다. 이때 그물을 덮쳐 매를 잡는데 이를 사수 또는 사수잡이라고 한다.

 매사냥은 왕, 양반층,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성인 남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 놀이로서, 산야를 뛰어다니면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매우 흥겨운 겨울철 운동이다. 한 해의 농사를 끝낸 후 농한기에 생활의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지면서 행했던 매사냥은 취미 활동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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