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바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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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바라는 의사
  • 김명일
  • 승인 2012.07.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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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명일 / 평화의료생협 평화의원 원장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떤 의사를 바랄까?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양가감정적'인 요소가 있다. 높은 학력과 보수, 안정적인 일자리, 사회적 영향력 등의 면에서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 땅의 부모들은 너도 나도 자식들을 의대에 못 보내 안달이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의사들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봉사와 희생이 부족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이기주의 집단의 전형으로 언론과 방송의 뭇매를 맞는 단골 고객이기도 하다. 주위의 동료와 선후배를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양가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도 이야기되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환자들의 싸늘한 태도에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교사와 학생, 사업주와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이 틀림없다. 어느 한쪽도 다른 한편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다. 만약 사회의 다양한 집단 사이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건강과 질병을 매개로 만나는 의사환자관계에서 상호신뢰 중요성은 결코 적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환경에 맞추어 상호집단 간 신뢰를 계속 유지하려면 서로 바라는 기대욕구를 먼저 파악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환자들의 사회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환자단체들 연합회에서 개원하고 있는 의사들의 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조사를 올해 4,5월에 걸쳐 실시했다.

전국에 걸쳐 2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남녀환자 75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 대기시간 ; 환자들은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약시스템(44%)이나 예상대기시간을 알려주는 서비스(34.2%)를 요구하고 있었다.

- 진료시간 ; 진료시간 연장에 대한 요구가 컸으며 오전 9시~오후 8시(35.4%), 오전 9시~오후 7시(24.8%), 오전 8시~오후 7시(21.2%)의 순이었다. 응급상황에서 적절한 대응, 야간과 공휴일에 단골의원과 통화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 프라이버시 보호 ; 환자들의 14.4%는 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동안 다른 환자가 진료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등의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진료공간과 대기공간이 명확히 구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 위생상태 ; 환자의 75.3%가 진료 시 사용되는 기구나 기계가 비위생적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 의사의 태도 ; 환자들은 자세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진료만 하는 의사(52.%), 장사꾼 같은 의사(44%), 환자를 무시하고 권위적인 의사(43.8), 실력 없는 의사(40.2%)를 싫어하는 의사유형으로 꼽았다.

- 의학적 궁금증의 해소 ; 환자들은 인터넷, 서적 등 스스로 습득(49.8%), 주변 지인과 상의(22.5%), 의사와 상의(22.3%)로 나타나 여전히 의원 문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건강상담 의사의 필요 ; 질병 예방과 관리, 질병과 치료정보, 식이조절 ·식습관 개선정보, 스트레스·정신건강상담, 약물·건강식품정보, 개인·가족의 정신적·감정적 상태, 운동 등의 내용에 대해 의사와 상담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환자단체연합에서는 이러한 조사작업을 바탕으로 환자가 원하는 우리 동네 좋은 의원 10대 평가기준을 마련했다.

1. 환자와 소통을 잘하는 의사(환자에게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의사)

2. 환자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의사

3. 환자의 병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의사

4. 환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의사

5. 장사꾼 같지 않은 의사

6. 위생상태를 철저히 관리하는 의원

7. 질병치료 이외 예방, 건강상담까지 해주는 의사

8.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관리를 잘하는 의원

9. 야간, 공휴일에 의사 비상연락이 가능한 의원

10. 평일 오후 7시까지 진료하고 대기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는 의원

이런 환자들의 기대와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의원이 과연 있을까? 환자와 의료인들이 함께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의료생협의 의원들도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좋은 동네의원이 현재의 1차의료환경에서 원활히 작동하기에는 개별 의사와 의원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진료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적은 환자로 충분한 시간 진료를 한다면 의원의 운영은 어려워진다는 역설이 생긴다. 공휴일 응급진료, 전화상담이나 예방이나 왕진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개원의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적다. 그러한 사회적 보상체계를 마련하든지, 아니면 지역의사회나 보건소의 협력관계를 통한 해결책의 모색이 필요하다. 또한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에 대해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는 현재 표류 중인 만성질환관리제도가 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의사협회와 보건복지가족부와의 합의도출이 시급한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동네에 도시보건지소건설을 요구하고 의료생협에 조합원으로 참여하여 의료기관 소유와 운영구조를 바꾸는 데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1차의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료인의 교육과 양성이 확대되어야 하는 등 좋은 의원을 만들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의사와 환자들 사이에 회복된 신뢰관계 속에서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데 함께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조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사와 환자가 꿈꾸는 행복한 진료실은 불가능한 것인가?

다행히도 진료실에서 상호존중과 신뢰를 느끼는 환자와 의사동료들이 아직까지는 내 주위에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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