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삶을 존중하는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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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삶을 존중하는 복지
  • 김영수
  • 승인 2012.08.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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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컬럼] 김영수 / 갈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저희 복지관 사무실 한 편에는 300명이 넘는 이들의 삶이 담긴 사례관리 파일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지와 옹호,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문제와 욕구와 사연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기록됩니다. 경제적 상황, 가족관계, 질병, 받고 있는 서비스, 문제와 욕구, 이에 따른 상담과 지원 과정 등이 그 안에 담깁니다. 가족관계, 살아온 과정, 사회적 관계, 신체적 · 정신적 상황, 장애와 질병,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지원의 목적, 방식, 과정이 달라집니다. 같은 사례는 없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이듯이 사회적 지지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므로 다양한 문제와 욕구에 대해 개별적이면서 통합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생활현장에서 활동하는 복지관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야흐로 복지는 시대의 화두로 되었고, 저마다 복지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정치적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시대로 되었습니다. 정책은 예산을 통해 구체화하고, 목적과 대상, 방법이 정해져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집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 문제들은 유형에 따라 분류되고, 표준화됩니다. 통계와 조사는 이러한 과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기준이 정해지고, 기준에 따라 제공되는 내용이 결정됩니다. 사람들의 문제와 처지가 그 기준에 맞는지 판별됩니다. 각 사람의 고유성은 제도가 관심을 두는 기준에 근거하여 의미 있는 부분만 인정됩니다.


우습게도 삶의 현장에 뿌리를 박은 사람들은 제도에 맞추어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거나 감춥니다. 한 예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그에 기초한 제도적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경제적 지원과 의료서비스, 교육적 혜택 등이 대표적입니다. 수급권자는 수급대상자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프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돈을 벌 때도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런 일들은 일반적으로 노동조건이나, 지속성 측면에서 볼 때 열악합니다. 저희 복지관이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침에 출근하는 이들의 분주함보다는 해가 질 무렵, 어디론가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피곤한 발걸음을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책과 제도는 합리적이지만 경직되게 마련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각 사람의 처지를 놓고 제도에 부합되는지에 대해 열심히 다투고 있을 것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의 고유함에 대해 행정과 정책, 제도뿐만 아니라, 행정과 마을과 현장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각 사람의 고유한 이름은 통계와 도표, 숫자와 서류들 틈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복지에 막대한 예산을 썼는데도, 실제적 효과나 만족도가 낮은 것은 그 대상이 고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은 논문이나 이론서보다는 소설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목적이고 결론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가는 과정이 모두 다르지만 소중합니다. 정리되기보다는 서술되는 것이 삶이기에,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고유함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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