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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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
  • 김인수
  • 승인 2012.08.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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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인수 / 햇살요양병원 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고령화 사회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수명은 연장되고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노후에 양질의 삶을 보장할 만한 대책이 있는가 걱정스럽다. 모든 것이 변화되듯이 건강한 젊은 사람들도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고 외롭기까지 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보험회사의 선전문구가 이미 현실로 되어가고 있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다. 오래 전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노인들도 젊은이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하는 물음에 과감하게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고자 했다면, 이 영화는 노년기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가슴 저리게 그려냈다. 그 중에 가장 기억되는 한 장면은 영화 속 한 커플인 치매에 걸린 할머니(김수미 분)와 그 남편 장군봉 할아버지(송재호 분)가 세상을 체념하면서, 명절에 모인 자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방에 나란히 누워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들은 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가? 노인들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무척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무기력한 대한민국 복지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냥 불편해지는 심기는 어쩔 수 없다. 오랜 세월을 평탄하게 살아온 노부부가 어느 날 둘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리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표적 노인성질환인 알쯔하이머 치매는 뇌조직의 변화가 대략 진단 전 약 20년에 걸쳐 일어나는 장기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약 10%의 유병률을 보이며, 나이가 많아질수록 질환 유병율이 급속히 늘어난다. 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환갑을 맞은 나이가 의미가 있을 정도로 축하할 일이었고, 가끔씩 동네 어귀에 노망난 노인으로 생각되는 무서운(?)할머니가 아이들의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으로 되고는 했었다.

최근 평균수명이 80세인 고령화 사회에서 알쯔하이머 치매 환자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노인들을 봉양하는 게 한집 건너 근심으로 되고 있다. 대부분 노인성질환처럼 생활기능 저하에서 병이 처음 감지되지만, 병원을 찾게 되는 주된 이유는 기억력과 학습 능력 같은 인지기능 저하이거나, 불안이나 이상행동과 같은 정신행동증상 때문으로 주로 보호자에 의해 이끌려 오게 된다.

치매 환자의 기억력 저하가 건망증과 다른 점은 기억 못하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달라진 자기 행동에 별 다른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력에 한정되지 않은 다른 인지기능 영역(예컨대 시공간에 대한 지남력, 집중력, 판단력 등)에서도 기능저하를 흔히 동반한다. 이러한 변화가 장시간에 걸쳐 일어나면서 일상생활 수행이 곤란해지고 보호자에 대한 의존과 가계부담이 커지게 된다. 결국 치매 진행은 실인증, 실어증, 실행증(인지,언어,실행 능력의 상실)의 와상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치매는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한 질환이다. 흔히 이러한 특성을 가족의 고통으로 표현하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다. 환자의 돌봄이 보호자와 가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적 개입과 돌봄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구나 독거노인과 같이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지역사회에서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이다. 처음 진단이 내려질 때부터 (비교적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재정적 정리와 앞으로 진행(병을 포함한 가족관계 변화)에 대한 예상에 따른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계획을 집행하는 이는 환자 본인이 아니라 대리인이거나 지역 사회 센터 담당자들로서 결국 수많은 치매노인 삶의 질은 이들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수발을 해온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환자의 (분리)불안을 밤낮으로 함께 하면서 정신적으로 얽매이고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 보호자에 대한 지지가 필수적이다. 이들이 우울감을 보이고 지쳐한다면 수발의 부담을 덜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지역사회의 가족적·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신호이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장군봉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의 절망과 체념을 위로하고 삶의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죄책감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약 600만명으로 대략 10%에 해당되는 60만명을 치매환자로 추산할 수 있다., 고령화 진행으로 전체 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중이 날로 늘어나 2030년 24퍼센트, 2050년에는 약 38퍼센트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2년 7월 현재 710여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인구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 노인에 대한 적극적인 복지정책은 필수적이다.

젊은 세대에 부담만 안기는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노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산업 지원, 그리고 '노-노 돌봄'과 자원봉사체계 같은 지역적 연대를 통한 공동체 복원이 과제다. 더불어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서 벗어나 노후생활의 자기실현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노인에 대한 인식전환과 평생교육을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치매로 인한 동반 자살이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전체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죄책감과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그 지점에서 장군봉씨는 주차장 일을 하던 것을 오늘도 열심히 보람 있게 하고, 치매환자인 부인은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돌봄으로 마지막까지 평온한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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