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외상과 '묻지마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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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외상과 '묻지마 폭력'
  • 김인수
  • 승인 2012.08.3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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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인수 / 햇살요양병원 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보통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죽을 뻔한 위협적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후 심한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겪는 장애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적 외상은 정신적·육체적 증상을 유발하며 장기적인 스트레스 경험의 지속은 인격의 변화까지 초래한다. 특히 폭력에 의한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의 심각한 손상을 줌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폭력은 '묻지마 폭력'과 같이 사회적 불안을 극도로 야기하는, 통제되지 않는 불특정인에 의한 우발적 폭력과 사회체제 내적인 구조적이고 지배적인 힘에 의한 성·가정폭력, 그리고 체제방어와 연관된 전쟁·테러·고문 등과 같은 정치적 목적의 폭력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언론을 통해 한때는 성폭력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곤 하는 것이 일상적 반복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평소에는 별 문제 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성범죄자가 한차례 날뛰고는 대중의 눈앞에서 종적을 감추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은 기억 속에 희미해지고 다시 사회는 평온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불행히도 사건 희생자의 상처와 이후 인생은 원래대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이러한 양상은 인류역사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조명된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고조와 여론의 들끓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면서 대중의 망각이라는 주기적 반복 현상이 있어 왔다. 이 반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폭력이 체제화되어 있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복되어 대중의 관심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우연히(?)도 브로이어와 프로이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발견된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사실확인을 미루고 결국은 피해자의 성적욕구와 환상이라는 무의식 세계로 숨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석이라는 분야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은 폄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1893년과 1895년 브로이어와 프로이드가 발표한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는 '안나 O 케이스'로 널리 알려졌지만, 희생자(베르사 파펜하임)의 상처와 인생역정을 생각한다면 19세기 말 당시 현실에서(파리의 노동계급이나 비엔나의 자산가 계급의 명망있는 가족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성·가정폭력의 거대한 실상을 도외시한 채, 프로이드는 자신의 연구업적과 명성을 지키려 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프로이드도 두려워하게 했던 그 현실이 19세기 오스트리아에 그치지 않고 21세기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어떨까. 성적으로 억압된 권위적 사회, 기득권층의 위선적 이중적 행태,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 만연, 공권력의 부패와 타락 등은 성폭력의 전면적 실체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의 한 예는 현실의 근간이라고 생각되어 온 근본적인 믿음에 타격을 주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초 사회학자이며 인권운동가인 다이아나 러셀이 수행한 정교한 역학 조사에서 여성 4명 중 한 명이 강간을 당한 적이 있으며 세 명 중 한 명은 어린 시절에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보고하였다.

폭력의 희생자들은 정신적 외상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그들이 알고 있던 세계를 두려움과 불안, 공포 속에서 바라보며 일상생활에서 고립에 이르게 되고 극도의 공포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폭행이 만성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대표적인 정신과 진단으로는 신체화장애, 경계선인격장애, 다중인격장애를 들 수 있다. 전쟁 생존자에서 보이는 전쟁신경증과 각종 사건·사고, 재난에서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정신적 외상과의 공통점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을 붙이게 되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은 (성)폭력에 의한 정신적 외상(프랑스의 Janet 이후)이 비로소 과학적·체계적 방식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더불어 역사적인 정치운동의 전리품이기도 하다. 19세기의 프랑스에서 신흥세력인 자산가 계급이 왕정에 반대하며 벌인 반 종교운동, 베트남 전쟁을 정점으로 하는 반전운동, 그리고 1970년대 여성운동을 통해 광범위한 폭력에 의한 다양한 정신적 외상의 실태가 알려지고 사회적 자각이 넓혀질 계기가 마련되면서 폭넓은 연구로 자료들이 축적되어 정신의학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묻지마 폭력'은 사회가 불안해지고 한계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그 사회적 균열과 틈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절망적 몸부림으로 보인다. 이들이 질서와 사회통제를 위해 제거해야 할 일종의 오류들이라 할지라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사회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양극화, 경제위기, 빈곤화, 고령화, 청년실업, 가계부채, 생계형 범죄 등 사회경제적 불안정은 극심해지고 '폭탄돌리기' 가장 끝에 있는 절망적 개인들은 자살과 묻지마 폭력이라는 다른 경로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폭력이 일반적으로 강자에 의해 약자에게 가해지는 변태적 욕구충족 행위인 반면에 '묻지마 폭력'은 사회적 불만을 아무나를 대상으로 특정의 욕구와 상관 없는 자기파괴적이면서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극단적·자해적 폭력 행위이다. 또한 개인이 느끼는 절망과 불안이 어디에서 초래된 것인지 찾기보다는 억압의 즉각적 해체를 충동적으로 욕구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

'묻지마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즉각적 충동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여러 위험요인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처방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 사회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묻지마 폭력'의 또 다른 측면은 사회적 소통과 통합을 위한 역할이 실패하거나 부재하다는 반증이다. 특히 정치·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소통의 책임을 방기하고 심지어 현실을 왜곡하는 신문·방송의 역기능은 우리 사회가 비합리성과 소통불가의 '묻지마 사회'임을 제대로 광고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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