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 아내 정신건강 책임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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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 아내 정신건강 책임집시다
  • 황원준
  • 승인 2012.10.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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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준의 마음성형] 아내 마음의 병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서 찾아 왔다. 남편은 진료실 밖에서 들어오지 않고 혼자 진료실에 들어온 여자 환자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손에 뭔가 꽉 쥐고 있던 종이를 펴 보이며 "여기 나온 증상과 똑같아서 왔다"고 했다. 뭔가 보니 필자가 기고한 칼럼 내용이다.
환자 스스로가 미리 알고 오니 진료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환자를 다시 불렀다. 그래도 남편은 들어오지 않아서 진료실에 불러들였다.
하지만 남편의 태도는 별것 아니라는 듯한 인상이었다. 검사 결과를 설명하자마자 환자는 남편이 같이 있어서 그런지 증상을 다시 얘기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뒤쪽 소파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제서야 남편은 ‘이 사람이 별것도 아닌데 왜 울어, 원장님이 다 치료해 줄 건데 뭘 걱정해’라고 위로했다. 한참 후에 울음을 겨우 멈춘 환자는 “그동안 서러움이 많았다”며 마음을 열었다. 3년 전에 늦둥이를 낳고 우울증, 불면증과 불안증이 있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좋아졌는데, 두어 달 전부터 다시 우울하고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중요한 것은 정신적 증상이 문제가 아니라 증상에 대해, 불안한 아내에 대해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가 문제이다. 많은 남편들이 일 때문에 밖에서 늦게 들어오고, 신체적으로 멀쩡한 아내의 마음의 병은 모른 체하고 지나쳐 버린다. 그 무관심이 서러운 아내들은 누군가에 기대고 싶다가 의사에게 털어 놓고 나면, 자기 마음을 너무도 잘 받아주고 알아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이 나오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치료 받는 또 다른 주부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받는 사실을 남편에게 숨기고 지낸다. 겉으로 즉 신체적으로는 멀쩡하니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생긴 병이라고 하거나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면서 속 썩이지 않아 배불러서 생긴 병쯤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몸이 스펀지에 물먹은 듯 무거운데도 "아픈 데도 없는데 게으르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그러니 위로 받기는 고사하고 비난 받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 약도 몰래 먹어야 한다. 주방에 약 봉투 채로 감추어 두고 하나씩 꺼내 먹고 약 봉지는 휴지에 싸서 버린다. 그런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반면 100점짜리 남편도 있다. 국가의 포상제도 중 ‘정신병에 걸린 아내 간병상’이란 그런 항목이 있다면, 공개가 가능하다면 공개적으로 포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남편이 있다. 조현병(과거 정신분열병인데 편견으로 인한 거부감을 없게 하려고 병명이 바뀌었다)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잘 치료 받으라며 격려하며 도와주는 공무원 남편이다.
이 남편에게는 100점이 아니라 200점이라도 주고 싶다. 공직생활을 하는 이 남편에게 아내의 조현병은 그리 달갑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감추고 싶은 깊숙한 비밀일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를 간병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진단서를 발급받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서로 옮겼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때로 환자라는 것을 잊고 큰소리로 신경질을 내거나 주부로서 살림점수가 낮으면 화낼 법도 한데 어쩌다가 큰소리라도 내고 나면 이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이다. 곧 "여보, 미안해. 내가 나도 모르게 화를 냈네"라고 사과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수 십 년간 진료한 경험에 따르면 이 남편의 행동은 진료실 의사 앞에서만 하는 위선적 행동이 아니다. 너무도 진심 어린 눈빛에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필자도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감동하곤 한다.
마음의 병은 마음의 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가족의 정서적 지지가 정신건강의학과 모든 질환의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배우자의 질병에는 건강한 배우자의 따뜻한 배려와 걱정, 염려 그리고 정서적 지지야말로 약보다도 귀한 처방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 재료라고 할지라도 맛있게 요리할 양념이 필요하듯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에 좋은 약이 있어도 배우자의 아름다운 마음의 양념이 없으면 그 약은 100% 약효를 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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