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르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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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르메를 만나다
  • 정민나
  • 승인 2012.11.0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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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정민나 / 시인



 말라르메는 끊임없이 자기 예술의 수단인 언어에 대해 성찰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자기 예술의 본체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보들레르의 율법을 자기의 삶 세부까지 준수하였다. 세공사가 보석을 다듬듯 언어의 모든 단어들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비춰 보았다. 시어를 엄격히 엄선하여 가장 순수하고 밀도 높은 시의 경지에 이르도록 순수시 이론을 펼쳐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삶에 거리를 두고 정신적 완성의 추구를 목적으로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산 이상주의자였다.

 말라르메를 추종하는 폴 발레리는 온갖 수월함과 행복한 결말을 거부하는 그(말라르메)를 일러 ‘숭고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사실 조악하고 허영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그는 마치 순교자와 같은 존재였고 그러한 심오함의 깊이는 일종의 고귀함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고귀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젊은 발레리에게 준 정신적인 교훈은 무엇이었나? 그것이 곧 언어의 본성을 묻는 질문으로 대치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보기에 말라르메는 언어형식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발레리는 통사구조 자체에 열중하는 말라르메에게서 하나의 대 수학의 형식을 발견한다. 그것들이 지성적인 세계구조를 발견하도록 인도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말라르메의 이러한 완벽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는 문우와 독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그의 글을 두고 겉 멋 부림과 의미의 빈곤, 난해함이라는 공격을 가하기도 하였다. 사실 말라르메는 자기가 마치 언어를 창안해내기나 한 것처럼 비범한 야심을 가지고 순수시에 대한 초인적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순수와 순결과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고 있는 그의 시 ‘에로디아드’는 그리하여 ‘미학의 순수한 빙하’라 불리우게도 되었지만 신이 추방된 자리에 시성의 원리로 암중모색, 조직되는 시의 말이 과연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까?

 발레리는 고립된 확신 속에서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언어의 신비를 통해 만물의 신비를 표상하려고 한 말라르메에게 일종의 경외감을 갖고 있었지만 사물의 외부적 인상이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시구를 파들어” 가는 일에만 몰두한 그가 맞닥뜨린 것은 ‘공허’라는 심연이었다. 그는 어떻게 저 메마른 원리라는 절망을 빠져 나올 것인가?

 도덕적 경건주의, 무조건적인 정언명령, “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 원리로서 타당하게 행동하라”고 말한 사람은 철저한 도덕주의자 칸트였다. “시구를 파들어 가” 그 순간에 사물을 지각하려 한 말라르메는 비루하고 우연한 경험 세계 대신에 완전하고 절대적인 언어세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불후의 언어”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자신의 의지로 필연적인 우주를 구축하려는 투지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도는 그를 극단의 허무에 봉착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말라르메는 ‘실어증’을 앓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작품 그 자체의 논리에만 의지하여 편집적으로 몰두한 그의 노력들이 ‘숨막히는 도덕 근본주의자’로 귀결했기 때문이다.

 말라르메의 순수시에 대한 초인간적 집착이 그에게 실어증의 고통을 안겨 주었듯이 순결의 이상이었던 ‘에로디아드’는 그 불모성으로 끝끝내 시인을 괴롭혔고 완성을 보지 못하게 한 불행한 그의 작품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시구들을 이 정도까지 천착하면서 나는 나를 절망에 몰아넣은 두 가지 심연을 발견했네. 그 하나는 내가 불교를 알지도 못하고 도달해 버린 無인데 난 아직 너무 비탄에 빠져서 이 시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고 너무 고통스러운 생각 때문에 포기해 버린 그 작업에 다시 착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 내가 발견한 또 하나는 내 가슴의 공허라네.”

 말라르메가 카잘리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그가 창조의 고통스러운 ‘의식’을 지속하였기에 공허와 고통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상은 ‘당위의 철학’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법이라서 이성적이고 양심적으로 絶對善을 지향하는 도덕주의는 어느 정도를 넘으면 스스로를 속박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은 절대선이라는 양심의 이름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세계 일 이차 대전이나 미국 쌍둥이 빌딩의 폭파에서 볼 수 있었다. 에고가 발동하는 순간 ‘독선’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 “너의 준칙을 통하여 언제나 보편적 목적 왕국의 입법 성원인 것처럼 행위하라”고 한 칸트의 한계는 데카르트의 한계요, 머리 좋은 사람들의 공통된 한계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실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이상적 인간만 보는 것, 즉 ‘의식의 대법’에 의하여 이상적인 지고지선(至高至善)과 일치하고자 스스로 최면을 거는 도구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先子들은 인간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양심의 소리를 절대화하면 오히려 덩달아 자기 의지도 절대화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양심이 자신의 에고에 물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라르메는 자각하지 못한 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도달하곤 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칸트의 철학이나 말라르메의 언어가 ‘구성주의’ 한계내의 것이라면 진리를 정해 놓고자 하는 모든 움직임을 말하는 구성주의의 완성은 도덕주의로 골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말라르메는 시에 대한 초종교적 믿음으로 수세기를 거쳐 생성된 순수한 시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지만 그런 강한 의지와 자부심 때문에 절대적 고독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말라르메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책’을 언급하게 된다. 그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기획을 하고 가설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설은 검증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 쓰기를 통해 그는 좌절의 무한을 경험하였던 것이리라. 자신이 쓴 책보다 쓰지 않은 책으로 더 유명해진 말라르메의 시는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하여 실패작이 되었다는 사르트르의 비판이나 “나 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 원고들은 쓸모없는 짐이 될 뿐이니 태워버”리라고 아내와 딸에게 한 유언을 통해서 예술의 완벽함의 기준을 현실의 한계 밖에 세우려던 그에게서 피해 갈 수 없는 좌절의 실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말라르메의 책은 “단 한 권 밖에 없는” 책이며 세계 전체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오직 그 내부의 질서가 존재할 뿐 바깥이 없는 책이다. “우주에 대해서 우주에 의해 작성되는” 말라르메의 책은 우주의 모든 것을 종합하는 ‘대문자의 책’이 된다. 말라르메는 신의 의지가 차지하던 자리에 이성적 원리를 대입하여 자연사나 인간사를 설명하려 했고 그것은 근대 인문학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라르메가 외부적 실재에서 눈을 돌려 시의 내부에서만 새로운 미학을 찾았기에 그가 추구한 詩情은 지루하고 더 숨이 막혔을 것 같다. 실재로 그가 보들레르의 영향에서 글을 뜨던 때 “창공”은 절대미를 표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이었지만 그 무한한 청정무구는 시인에게는 필연의 절대미와는 거리가 멀었고 “창공으로 표상되는”이 至高의 모델인 ‘창공’은 말라르메에게 고통을 안겨준 차가운 시적 이상이 되었다.

그의 시 “벌 받은 광대”처럼 신성 모독의 죄의식을 되살아나게 하거나 “얼음과 잔인한 눈의 하얀 밤”처럼 도달할 수 없는 차가운 이상은 말라르메에게 잔인한 무기력만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런 시적 이상이 주는 불모성은 비천한 현실을 잊게 해 줄지언정 “이 이례적인 노력이 나를 탈진시”킨다 라고 전한 ‘서한 카잘리스’의 편지에서 말라르메는 공허하고 혐오스러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말라르메는 백지 앞의 고뇌와 무능, 허탈 등으로 죽어가는 시인의 불모성을 치유하기 위해<에로디아드>를 중단하고 감각적 관능과 소위 말하는 에로티시즘을 반영한 <목신의 오후>를 구상하게 된다.

창조의 고통스런 “의식”에서 빚어진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몽환적 反 의식의 도취 속으로 걸어가 신비로운 미의 여신을 껴안는다. “차가운 접근불허”의 무거운 의식 대신 일탈의 결과로서 <목신의 오후>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 역시 기교적인 면에서 사물의 인상이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그의 새로운 미학에 의존한, 그야말로 그 자신의 표현대로 “참담히 어려운 짓기”에 해당되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내부로 끝없이 침잠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고뇌를 인내한 시인은 그런 후에야 “허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말라르메가 허무의 허탈감에서 “순수개념”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폴 발레리의 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가 지속적 몸부림으로 “무”를 향해 치닫고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향한 바는 그 始原的 순수 무구로의 완벽함이었고 그것이 아무리 한 인간으로서 이룰 수 없는 목표의 설정이었다 해도 그러한 엄격함이 발레리로 하여금 그의 일종의 숭고와 고귀함, 긍지 같은 것을 증언하게 한 것으로 보였다.

오로지 엄격함을 따라간 순교자와 같은 존재인 말라르메를 추모하는 발레리는 그가 “온갖 수월함과 행복한 결말을 거부하고” 허영이나 조악함과는 거리가 먼 “순수정신”의 한 표본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말라르메가 구상하는 문학은 하나의 대수학과 유사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 문학은 작품 그 자체의 논리에만 의지하여 언어형식을 명확히 하고 형식 자체를 위해 사유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정수론과 대수학의 비유는 발레리의 글에서 종종 나타나는데 시가 학문(과학)과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발레리는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만들어진 작품도 아니요 세상 속에서의 영향”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것을 ‘만드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즉 행위자의 의지와 엄격한 계산에 의해 표현된 “꾸밈없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작가가 말라르메이고 그래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생 마음 속 깊은 동반자로 삼은 그는 발레리에게 있어 변함없는 긍지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말라르메가 언어형식에 비중을 두었다면 발레리는 에스프리(정신)작용에 그 가치를 두었다. 자기 예술의 본체를 만들어간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고립된 확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언어의 본성과 가능성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럴듯한 반응들에 편승하지 않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영광’이라는 것에서도 거리를 둔 이들이 진정한 작가의 태도로서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작가라면 자기 예술의 조건들을 반성해야 하고, 바로 이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요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는 내면의 빛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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