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질환과 복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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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성질환과 복지정책
  • 김인수
  • 승인 2012.11.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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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인수 /햇살노인전문기관 햇살요양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양병원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노인성질환과 임종이다. 대개 노년기 삶의 마지막 단원에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혹자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출발점이라고도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떠한 우여곡절로 살아왔던 간에 그 차이가 없어지는 지점으로 본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절대적 시기이다.

현 세대의 우리는 수천세대의 인류가 이어져 온 진화적 산물을 후대에 전수하는 마지막 소임을 마치고 각자 인생의 마무리를 짓게 된다. 이것을 허무하다고 항의를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새로운 믿음을 찾아 종교적 진리와 같은 불멸의 의미를 추구하려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노년기에 들어서 인생은 자연의 변화에 맞춰 시들어가는 황혼의 고달픔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이 80의 한 작가는 사람이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관함에 약병이 점점 많아지고, 해가 갈수록 손에서 발이 점점 멀어져가며, 오후에 졸음에 못 이겨 깜박 잠들고, 뼈가 쑤시고, 밤에 활동(운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다른 색의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신발장에 남겨진 각각의 짝들을 찾는다.”

자연적 노화에 맞서 정열과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건강의 점차적인 상실은 진행되면서 노인성질환과 임종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성공적 노화란 신체적 건강, 정신사회적 건강 그리고 죽음에 의해 평가되어진다.

현재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치매, 중풍으로 대표되는 노인성질환자의 수발을 위한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년기에 수발과는 뗄 수 없는 의료서비스나 생활비(연금소득) 및 주거에 관한 복지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일단 노인성질환에 의한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제도로서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성질환자의 돌봄에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발을 필요로 하는 장애가 생겼을 때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가 되기 위한 첫 절차로 요양 등급을 받아야 한다. 요양등급의 판정기준을 5가지 영역으로 보면, 일상생활기능, 인지기능, 문제행동(정신행동증상), 간호처치, 재활물리치료 영역이 있다. 급성기 증상에 대한 치료가 끝나고 남은 장애가 어느 정도의 기능저하를 초래했는지를 판정하는 것이다.
현재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만성 퇴행성 질환 역시 같은 기준으로 판정을 한다. 때문에 동반된 신체질환 없이 뇌기능의 저하에 따른 전반적 기능의 지속적이고 완만한 저하를 경험하는 이 질환의 특성 상 판정기준으로 인한 불리한 판정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비교적 높은 판정점수를 얻어서 중증으로 인정되어야 요양(수발)보험의 혜택을 받게되는 현실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려는 동기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만성적으로 악화되는 질환의 특성으로 볼 때, 중증 환자의 누적으로 요양시설의 업무가 수발부담뿐 만 아니라 더 많은 (외부)의료서비스의 연결에 집중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노인성질환자의 건강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의 존재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주어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관계에서 개인의 기능을 평가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유지하게 하는 포괄적인 조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성질환의 기능장애로 말미암아 필요로 하는 수발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다. 중증의 노인환자를 모시는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한된 시혜적 목표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국가 재정지출상 낮은 비용으로 시설에 수용해 수발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이상의 목적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노인의 주거지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재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상실되고 있으며 요양시설에서는 어르신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는 하나 수발위주의 기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감의 상실과 관계의 단절은 일차적 죽음이다. 고립된 존재로서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잊혀 지낸다면 남은 것은 완전한(?) 죽음을 위해 신체적 기능의 정지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회적 효라는 수발서비스가 가족이나 지역사회와의 관계의 단절을 정당화시키거나 대체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임종을 앞둔 어르신은 마지막까지 정서적 공감을 원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했던 이들, 가족과의 이별을 위한 감사와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남은 후대는 지난 세대의 삶의 지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노후생활에 대한 책임은 개인과 가족이 포함된 사회공동체가 져야 한다. 특히 사회적 부가 일부에 편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세금을 걷어 국민의 생활을 안정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개별 가족에게 노부모의 봉양을 책임지게 하던 시대는 지났다. 고령화 사회에서 정부의 공공성이 어떠한 노인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노인정책이 제시된다고 해도 기초 자치단체의 살림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살림으로 바뀌어 갈 때, 진정한 (노인)복지의 진전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역사회에서건 학교에서건 자치관리의 과제는 외면당하고 그 위험성만 과도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결과 기본적인 인권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각 영역에 있어서 관계자들을 서로 대립시켜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사회개혁의 출발을 좌초시키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리더십에 의한 노인정책 등의 개혁과제의 해결과 더불어서 현재 흩어져 있는 각종 위원회 등의 기초자치단체의 기구들을 주민들의 생활적 요구를 수렴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실질적 기구로 통합관리해야 한다. 공무원에 의한 일방적인 관료적 관리가 아닌 사회통합적 주민주도관리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여 관료사회를 혁신하고 공무의 파당성을 극복해야 지속적인 지역발전의 토양과 복지사회의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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