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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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 이우재
  • 승인 2012.12.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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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공자왈 맹자왈]

맹자(BC 371경 ~BC 289경)

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말끔하지 못한 단일화로 인해 박근혜의 독주로 끝날 것 같던 대통령선거가 안철수의 재등장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가 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승부는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실상 주인공은 안철수다. 안철수의 등장과 퇴장이 선거 판세 전체를 뒤흔들었으니 말이다. 소위 안철수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안철수는 새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안철수 현상은 정치 문제가 아니다. 경제 문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젊은이들이 학교를 나와도 들어갈 직장이 없고, 따라서 희망도 없어진 것이 바로 젊은이들이 안철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민주당의 무능도 일조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 경제 문제가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는 비정규직만도 못한 자영업자 문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공리 중 하나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보란 듯이 비웃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수명은 늘어만 가는데 대책은 하나도 없는 고령자 문제 등은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기능하는 나라일까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민주당은 이명박정권 때문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김대중정권, 노무현정권 내내 자영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계속 악화되었을 뿐이다. 이명박정권의 재벌 일변도의 정책이 보다 큰 책임을 묻게 만들지만, 노무현정권이 더 책임이 있느냐, 이명박 정권이 더 책임이 있느냐는 33점이냐 38점이냐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 안철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IT산업으로 중견기업을 이룬 그의 경력이 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주지만 착각은 이명박 하나로도 족하다. 또 막대한 부를 아무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한 그의 심성에 기대를 하고 싶지만, 개인의 선(善)과 사회 경제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분명하고도 명백한 것은 이 문제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체제, 특히 20세기말에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자본주의의 한 역사적 단계로서의 신자유주의체제 그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200여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역사가 말해 주는 것은 이것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고유한 모순의 발로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숙명적 문제라는 것이다.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자본주의는 의심의 여지없는 유일한 경제체제로서 독존의 지위를 구사해 왔다. 자본은 신성불가침 그 자체였다. 몇 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자본의 허구가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도 개별 자본의 행태만 문제가 되었을 뿐, 자본의 신성불가침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본은 정말 신성불가침일까?

중세 봉건 사회에서 국가는 군주의 사유물이었다. 말 위에서 수많은 전투를 통해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당연히 천하는 내 것이요, 내 자손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만일 어떤 자가 자신이 수많은 노력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 나라는 내 것이라 한다면 아마 거리로 뛰쳐나온 국민들에 의해 교수대에 오르거나, 교도소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근대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나라는 그 나라를 함께하는 온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자본은? 나라는 온 국민의 것으로 민주화되었는데, 자본만은 왜 중세 봉건 군주의 지위를 홀로 누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단지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안철수는 컴퓨터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 하나로 수천억의 재산을 움켜쥐었는데, 그의 노동은 정말 거리에서 청소하는 노동자 몇 만 배, 몇 십만 배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자본가는 우리 같은 범인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인가?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왕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그렇다면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일이 있겠군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하신다면, 대부(大夫)들도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할 것이며, 사(士)나 서인(庶人)들도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게 되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할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의 집안이며,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할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의 집안입니다. 만에서 천을 갖고 있고, 천에서 백을 갖고 있다면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의(義)를 뒤로 하고 이를 앞세운다면, 다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없으며, 의로우면서 그 임금을 뒤로 하는 자는 없습니다. 왕께서는 단지 인의만을 말씀하셔야지 하필이면 이를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饜.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 『맹자』「양혜왕상」)

공자가 말했다. “이익을 좇아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 - 『논어』「이인」)

이(利)는 만악의 근원이다. 그런데 그 利를 좇아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놔두고 작금의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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