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감동의 현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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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감동의 현장이어야 한다
  • 최일화
  • 승인 2013.01.06 10: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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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최일화 / 시인,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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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감동의 현장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신기하여 날마다 감동이 샘솟는 곳이어야 한다. 학교의 행사가 감동적이고 교사들의 언행이 감동적이고 학생들의 학습활동이 활기차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감동이 없는 학교, 감동이 없는 학창생활, 감동이 없는 청춘은 건강하지 못하다, 발전이 없다.

사오십 년 전 나의 초중고 시절은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다. 비록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운동화 한 켤레 제대로 신어보지 못한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겁고 신바람 나고 가슴 설레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황금들녘을 가로지르던 등굣길이 감동적이었고 소풍이며 운동회며 학예회, 모든 것이 즐겁고 감동이었다.

마을 선배들과 함께 토끼몰이를 하던 일이며 자치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연날리기 모든 것이 신나고 즐겁기만 했다. 여름 내내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토끼풀을 뜯고 소꼴을 베던 일, 새집을 찾아 산비탈로 쏘다니다가 마침내 발견했던 할미새 둥지, 산새 둥지, 종달새 둥지가 무슨 보물이나 되는 양 의기양양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감동의 시절이다. 아침마다 활짝 피는 나팔꽃을 보아도, 지나가다 꽃밭에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보아도 그냥 신비롭고 저절로 황홀경에 젖는 시절이다. 솔밭에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솔잎이며 담장 곁에 환하게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보아도 공연히 가슴이 설렜다.

작은 것에서조차 감동을 찾는 삶은 윤택하고 활기차다. 아무런 감동도 없는 생활 그것은 권태로운 삶이요 폐쇄적이고 발전이 없는 삶이다.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을 보고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도 계절의 추이를 느끼는 삶은 감동적이다. 크고 희귀하고 웅장한 것에만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고 사소한 일상 속에도 놀라운 것들이 수두룩하다.

요새 학교에는 감동이 없다. 어떤 이는 요새 아이들은 취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생명력은 저 자연 속에 있는 것을. 배려하는 마음속에 평화가 있고 사랑하는 마음에 행복이 깃드는 것을.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는가. 부자가 되어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호령하며 살기 위해서?

자녀 여섯 명을 하버드와 예일대에 보낸 전혜성 박사는 말한다. "공부만 파고드는 학점벌레가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또 덧붙인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부터 제대로 세워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인생의 목적을 가르쳐야 한다. 재주가 덕을 앞서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저 반수만이라도 대학 공부 집어치우고 배우고 싶은 것 배운다면 나도 그러겠는데. 아니 삼분에일 만이라도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나도 그러겠는데. 대학을 향해 모두 다 총 출동이니 나만 빠질 수도 없고. 대학 간판 아니면 어디 행세 할 데라곤 없으니 이를 어쩌랴.

공부에 지쳐 늘어진 피로하고 무기력한 모습들. 잠을 못 자 늘 반쯤 감긴 눈꺼풀, 지쳐 방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 그 나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랑의 열병을 한번쯤 앓기라도 하련만 연애 마저 흥미가 없어 시들해진 것 같다. 무취미 무감각이 청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니 학창의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학교는 감동의 장이어야 한다. 학창시절은 감동의 시절이어야 한다. 끝없는 모험심을 가지고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드넓은 세계 속으로 꿈을 찾아 나서야 한다. 공부에 찌들어 점수 몇 점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옹졸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크고 작은 감동이 학교에 가득 넘쳐야 한다.

제자 중에 ADHD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전국 규모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사회과목이 항상 일등급이었다. 영어공부는 아예 포기하고 시간 내내 마술만 연구하는 제자가 있었다. 내버려두었다. 맨 뒤에 앉아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 결국 마술과로 진학했다. 학교는 이런 감동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작은 감동을 찾아내고 격려해야 한다. 용기를 북돋워 이런 감동이 연일 솟아나야 한다. 학교가 감동의 생생한 현장이어야 한다.

등굣길도 귀갓길도 즐거워야 하고 수업시간도 점심시간도 즐거워야 한다. 동아리활동도 신바람이 나야 하고 과학실험실에서도 음악실, 미술실에서도 감동이 넘쳐나야 한다. 입학식에서도 설레야 하고 졸업식에서도 당당하고 꿈으로 가득해야 한다. 계절마다 새로운 자연의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동해야 한다. 연예인에 열광하듯 소리치고 날뛰라는 얘기가 아니다. 조용히 내면을 울리는 감동이 진정한 감동이다.

들뜨는 것과 감동은 다르다. 공연히 들떠서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것은 감동이 아니다. 감동은 진지한 삶의 자세와 끊임없는 자기 성찰에서 온다. 늘 분발하고 깨어있을 때 감동은 찾아온다. 예리한 관찰 섬세한 감성이 없다면 감동은 없다.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는 노래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뛰노니/ 내 어렸을 적에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네/ 내 늙어져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을진대 이 몸 차라리 죽게 하소서/…(중략)’ 하늘의 무지개를 보고 마음이 뛰는 것, 그것은 바로 감동하는 삶이다. 늙어서도 그런 자연의 경이에 감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내용이다.

성적도 중요하고 대학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행복도 중요하다. 축 늘어진 학생들을 보면 가엾다. 마지못해 하루를 시작해 무기력하게 하루를 마감하는 10대 청소년들을 보면 안타깝다. 저 귀한 아들딸이 성적 때문에 어깨가 늘어지다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남모르게 고민하고 꿈이 흔들리다니. 그들 가슴 속 소담스러운 꿈이 다시 약동해야 한다. 숨어있던 그들만의 달란트가 보란 듯이 솟구쳐 싹을 틔워야 한다.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의 관점, 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맹목의 시선으로, 편견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고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타고난 달란트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생명력 넘치는 감동의 현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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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환 2013-01-07 09:05:15
그걸모르는사람이있나요?문제는어떻게그렇게만드냐는거죠?방법이빠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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