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시장의 떡집주인,이종복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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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의 떡집주인,이종복 시인을 만나다
  • 정민나
  • 승인 2013.01.16 18: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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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정민나 / 시인
이종복.jpg
 
신포동에서 출생하여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는 시인이 있다. 20년 넘게 방앗간의 떡집 주인으로, 시를 쓰며 강단강의를 하는 선생님으로 늘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 이종복이 바로 그 기인이다.
시집 속에 그가 나고 살아온 터전에 대한 정감이 묻어나는 신포 시장은 수많은 역사적 비하인드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인천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일본식 정원 향지여관과 중국인들이 무덤으로 삼았던 의장지 골목, 아펜젤러 목사 부부가 묵었다는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 호텔…… ‘중화루’로 불리었던 그 곳에서 있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는 틈만 나면 우리에게 들려주곤 한다.
 
천주교 치명자 자손인 그는 신부가 된 형들 대신 할 수 없이 가업을 물려받아 방앗간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딱 일 년 만 해보자 했는데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는 방앗간 이야기는 길고도 재미있다. 신포동 뒷골목 이야기로 시작해서 북성동 차이나타운 이야기, 만석동 굴다리 방물장수 이야기를 거쳐 독쟁이고개, 거북시장이야기로, 마치 박물들을 다 쏟아놓고서야 끝이 나는 것처럼
 
입 안이 쓰다고, 밥알이 돌덩이 같다고 / 고모는 세상과 단절되어 가는 순간들을 / 전화로 일러 주신다 // “이빨도 남의 이빨이여 / 무르팍 뼈 마디 안 쑤신디가 읎어 / 지팽이 읎신 돌아댕기기도 힘들구마!” // 밭에서 갓 나왔는지 / 똥 냄새 나풀거리는 무 한 묶음을 받아 들었다 / 연수동, 문학산 산자락이 도시와 만나는 경계 / 미처 개발이 안 된 텃밭에서 키운 것이라며 / 스테파니아 형수는 이-마트 노랑 비닐 봉투에 / 무를 담뿍담뿍 담아 주었다 //갑옷처럼 황토를 두르던 무는 / 급살로 쏟아 붓는 수돗물에 쉽게 닦여졌다 / 원죄의 사슬도 황톳물처럼 흘러가버렸으면 좋았을 / 무 한 소쿠리가 발가벗은 채 창백해 있다
―「무시루떡」 부분
 
하루 일과 중 떡 만들기가 첫 번째라는 이종복 시인은 새벽같이 일어나 떡을 반죽한다고 한다. 필자와는 같은 작가회의 소속으로 한때 잠시 운영 상황이 어려웠을 때 함께 힘을 모은 동료 문인이기도 하다. 누군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앞장서지 않으면 원활하게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가 있는 것이 단체 활동이다. 시인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따끈한 떡을 만들어 가난한 동료들의 공복을 채워 주곤 하였다. 작가의 실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팍팍함을 떡을 만드는 과정에 겹쳐 놓고 쓴 시가 <무시루 떡>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낮은 자리의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평소 시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시장 어둠 속으로 / 여지없이 햇살이 들었다 / 미처 불을 끄지 못한 가로등이 / 시장 한 가운데서 부르르 떨고 있다 // 텅 비어 있는 가게들 / 임대 쪽지가 나풀거리는 / 신포의 아침 // 묵직한 그림자가 걸려있는 좌판마다 / 궂긴 결을 그리며 / 켜켜로 솟아오르는 / 아침 햇살 //오늘도 누군가 / 묵묵히 걸어 나와 / 해 하나 걸쳐두고 돌아가는 것을 / 기어이 보고 말았을 // 당귀 꽃 이파리는 / 팔만 사천 개
― 「당귀꽃에 물을 주다 」 전문
 
임대를 구하는 사람도 임대가 나가지 않아 쪽지를 붙인 사람도 묵직한 그림자로 다가오는 시인이게, 좌판마다 비추는 햇살은 꽃과 다름없다. 당귀 꽃 이파리 팔만 사천 개에 햇살이 들기를 바라는 것은 동지애를 머금은 따뜻한 희망이다. 임대 쪽지가 붙은 장소처럼 서늘한 그들 모두에게 해가 들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조갯살을 까는 여자의 작은 종지에 쌓이는 사연을 담은 시, <마수걸이>를 비롯해 세창양행 바늘 쌈지, 노무라 양은 그릇, 들것에 실려 나간 칠성 상회 형수, 80년대 교복, 신포동 69다방, 무네미 마을……마치 자신의 몸속에서 하나하나 꺼내는 유물과 유적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를 유년의 기억으로 안내한다.
 
퉁퉁 부은 다리가 새벽이면 감쪽같이 나아 다시 떡을 반죽할 수 있다고 하는 시인. 그래서일까? 떡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의 생김새도 주문을 받는 핸드폰도 그가 지닌 모든 물건들은 울퉁불퉁 거칠기만 한데 그 손으로 빚어내는 무지개 떡, 송편, 인절미, 무시루떡의 모양은 곱고 예쁘기만 하다. ‘인기 많은 떡집’으로 소문이 나 휴일에도 쉴 틈이 없지만 그의 산적처럼 투박한 손은 아름답기만 하다
 
맛있는 떡처럼 소중한 기억을 재생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를 나는 ‘기억 중독자’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수사를 첨가해야 한다. ‘중독자’라는 말은 병증을 환기하지만 ‘고마운 기억 중독자’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그가 그린 또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을 소개하자면 어려운 한 때 동행했던, 작가 회원들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머리카락 헝클어지는 것도 몰랐네 / 가슴이 다 드러나도록 / 앞만 보고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 내 몸에 걸칠 것 이미 없네 // 불알 두 쪽 간신히 가리고 / 나무의자에 숨어드니 / 아아, 반가워라 / 발가벗은 나의 벗들 // 갈퀴머리 김정화 / 디지털 머리 정민나 / 새침떼기머리 이해선, / 찌질이 깻잎머리 신현수 / 서대문 산적머리 유채림 / 반백머리 박일환 / 달마머리 고철 / 아날로그 머리 유시연 / 남도 뱃사공머리 최종천 / 느닷없는 조선족머리 홍새라 / 그리고 관우의 수염을 깎아버린 최경주 // 아아, 탐스러워라 / 모과 향내 나도록 나무의자를 향해 / 살 빛 엉덩이를 박고 계시는 / 벌거숭이 나의 스승들
 
 「인천 작가회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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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기 2013-06-06 23:53:02
너는 늘 너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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